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가 가상화폐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극명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이코리아가상화폐와 관련해 서로 다른 입장을 밝혔던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토론프로그램에서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은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 한호현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함께 지난 18일 JTBC 뉴스룸에 출연, ‘가상통화 긴급토론,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토론에서 유 작가와 정 교수는 ▲가상화폐는 화폐인가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분리될 수 있는가 ▲국가 통제 없는 민간 통화가 가능한가 등의 주제를 두고 일진일퇴 공방을 버였다. 정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가상화폐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으며, 탈중앙화된 화폐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쳤다. 반면 유 작가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에 가상화폐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며, 화폐로서의 전망도 밝지 않다고 회의론을 폈다.

 

◇가상화폐는 화폐인가

유 작가는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이며, 가치가 안정되어 가치척도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가치저장은 부가적인 기능”이라며 “비트코인은 거래의 수단으로 쓰이지도 않고, 가치척도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 작가는 이어 가상화폐 전체가 아닌 비트코인으로 논의를 한정하자며, 지나친 변동성, 느린 거래 속도 및 높은 거래수수료 등의 한계로 인해 미래에 화폐로 쓰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 작가는 비트코인이 초기 장점으로 내세웠던 요소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사기’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 교수는 “지금까지 (가상화폐를) 물물교환에서 사용하지 않고 거래소에서 숫자로만 경험했기 때문에 화폐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며 “변동이 잠잠해지고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모두가 경험하게 되면 화폐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트코인이 지닌 문제들에 대해서도 “기술적 한계는 너무나도 빠르게 극복되고 있다. 이미 초당 몇백만 건의 거래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이어 “국가의 권위 없이도 개인이 충분히 신뢰가능한 거래를 할 수 있는 화폐로서의 기능이 있다”며 가상화폐의 사회적 기여를 고려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에 필수적인가

이번 토론은 가상화폐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유 작가는 가상화폐 없는 블록체인이 불가능하다면 기술을 폐기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반면, 정 교수도 블록체인 생태계의 성장을 위해 가상화폐는 필수적이라며 팽팽하게 맞섰다.

유 작가는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적용한 응용시스템일 뿐”이라며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수요가 있지만 가상화폐 자체는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비트코인)의 빠른 런칭을 위해 개발자들이 가상화폐를 제공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했을 뿐이라는 것. 유 작가는 블록체인이 음원시장이나 출판시장에 적용되어 발전해나갈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가상화폐라는 동기가 없더라도 이해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가상화폐라는 동기가 없더라도 다른 형태의 동기를 가지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블록체인 생태계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

반면 정 교수는 “(블록체인은) 국가라는 중앙 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개인과 개인이 거래를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금융경제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라며 “어떤 형태로든 화폐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이 화폐가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며 “블록체인 생태계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상화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 통제 주체 놓고 열띤 공방

유 작가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민간통화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유 작가는 “국가의 관리·감독 없는 화폐가 있는 화폐보다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국가의 화폐발행독점권을 민간 기술자 및 기업가에게 넘기는 것은 반대라고 말했다.

반면 정 교수는 “국가가 화폐를 통제해야만 올바르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전통적인 국가주의”라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가상화폐 경제로 인해서 국가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국가가 독점해온 금융권력이 기업과 개인에게 분산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와 민간이 각각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며, 가상화폐는 민간 통제 하에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

하지만 유 작가는 “화폐는 국가가 통제해야 잘 되는 분야”라며 정 교수의 의견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국가가 독점한 금융권력을 분산한다고 해서 시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배분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특정 소수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유 작가는 신규 발굴코인의 95%가 10대 채굴기업에 의해 채굴되며 이중 중국의 3대 채굴기업이 50%이상을 차지한다“며 화폐의 탈중앙화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 끝나지 않은 논쟁, 아쉬움 남아

유 작가는 블록체인을 건축기술, 가상화폐를 마을회관으로 비유했다. 건축기술을 통해 마을회관을 지어놨더니 도박장으로 활용되고 있더라는 것. 유 작가는 도박장을 근절하는 것이 건축기술에 대한 탄압은 아니라며, 현재 일고 있는 가상화폐 광풍에 대해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 작가는 단기적으로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도박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중개소 전체를 폐쇄해야 한다면서, P2P 거래의 활용가능성에 대해서는 긴 시간을 두고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정 교수는 가상화폐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국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블록체인기술과 가상화폐가 큰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며 국가는 불법적 요소를 근절하고 정보를 투명화하여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가상화폐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는 유 작가와 과학자로서 기술 발전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 정 교수는 결국 어떠한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이번 토론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번 토론은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가상화폐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정 교수의 주장을 지지하며 유 작가가 지나치게 고루한 주장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오히려 유 작가가 전문분야가 아님에도 더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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