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휴일이면 산에 가는 것은 거기에 건강한 식생을 가진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늘 자연에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최대한 자연을 내 곁에 끌어들이는 게 정원의 시작이다. 그래서 자연을 Nature 라고 한다면 정원은 Second nature 라고도 부른다. 정원은 자연과 교감하는 채널이다. 정원가꾸기를 한다는 것은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다. 정원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계절별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연중 아름다운 정원이 되는지 하는지 하나씩 짚어본다.

바탕이 흰색이니 층꽃나무의 갈색 꽃차례들이 훨씬 돋보인다.

식물에게 겨울이 중요한 까닭

여전히 4계절이 분명한 곳에 사는 우리에겐 정원이나 식물들에게 겨울도 참 중요하다. 열대식물들에겐 볼 수 없는 휴식(휴면)기간도 있고 꽃눈이 내부적으로 영글어지며 봄에 정상적인 꽃을 피우기 위해 저온(춘화처리)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봄 화단을 기대한다면 겨울이 참 중요하다. 남쪽으로 갈수록 겨울이 짧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길어 경기나 경북 북부지방, 강원도 산간지방 등은 길게는 6개월 가까이 겨울이 지속된다.

겨울정원에서 볼거리는 상록의 잎이나 빨갛고 노란 열매, 줄기 등의 수피, 그리고 갈색으로 변한 숙근류 잎이나 꽃차례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자연이 만들어주는 겨울정원의 모습이 있다. 바로 하얗게 내린 눈이 만드는 정원이다. 특히 눈이 많이 내린 곳의 정원에서는 식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명장면들을 연출한다. 엊그제 필자가 살면서 가꾸는 꽃담원(꽃담아카데미가 열리는 생태정원)에도 눈이 50센티 이상 쌓이면서 평소에 아무리 잘 가꿔도 볼 수 없던 진기한 눈꽃들이 피었다.

배롱나무는 하부는 가지가 없어 일자형 눈꽃을 만들지만 상부는 잔가지가 많아 라일락형의 눈꽃을 만든다.

나무 종류에 따라 눈꽃 형태 달라

눈이 많이 내린 정원에서 식물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나무마다 눈모자 쓴 모양이 제각각이다. 소나무, 향나무, 전나무, 주목같은 상록수들은 눈을 뒤집어쓰면 무게 때문에 가지가 아래로 쳐진다. 가지가 견딜 수 있을만큼 쌓여 있다 더 쌓이면 흘러내리기 때문에 눈 무게가 수형을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눈꽃들의 모양은 바람이나 햇볕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나무의 외부형태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참나무나 벚나무, 대형 감나무는 마디나 가는 줄기가 별로 없는 일자형이라 눈은 줄기 위에 일자로 쌓여 무등을 탄다. 배롱나무는 하부는 밋밋하지만 상부로 가면서 줄기들이 치밀해져 하부는 일자형, 상부는 럭비공처럼 생긴 둥근 눈꽃들을 피운다. 단풍나무처럼 마디사이가 짧고 가지가 많은 것들은 큰 송이를 이루며 공처럼 달려 있다. 내장산 특산인 굴거리나무는 녹색 잎들이 치밀하게 붙어 있어 그 위를 아기공룡 둘리가 끌어안는 모습을 취해 이색적이다.

고목인 대형감나무는 하부에 줄기가 없어 눈들이 일자로 무등을 탄다.

황금소나무는 위에서부터 녹이 녹아 자신의 황금잎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고 복자기단풍이나 감태나무도 여전히 붙어있는 갈색의 잎들이 흰 눈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키 작은 층꽃나무는 눈이 진작 털어져 내려 흰 바닥에 갈색자태를 맘껏 자랑하고 있고, 호랑가시나무도 날카로운 잎으로 하얀 눈 속에서 가시를 세우고 있다. 정원에 의자 몇 개 만들까 싶어 가져다 둔 소나무 둥치에도 눈이 쌓이니 그새 큰 식빵이 만들어졌고 어린 황칠나무는 눈 속에서 혹독한 성인식을 치르고 있다. 눈이 너무 와 돔 온실이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했지만 별 문제없이 눈을 털어냈고 눈 덮인 겨울풍경을 오롯이 보여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눈들은 이렇게 겨울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감성을 자극해주고 다시 녹아 식물들의 소중한 생명수로 쓰여 봄을 잉태하니 새삼 자연의 고마움을 되새겨보게 된다.

<필자 약력>

- (사)정원문화포럼 회장(2014~)

- 농식품부, 산림청, 서울시, 경기도 꽃 및 정원분야 자문위원(2014~)

- 꽃과 정원교실 ‘꽃담아카데미’ 개원 운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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