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9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코리아] 정부의 소액 장기 연체자에 대한 채무 탕감 계획에 찬반 논란이 거세다. 한편에서는 도덕적 해이 확산을 우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안전망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며 정부안을 찬성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10월 말 기준 원금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상환하지 못한 경우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밝혔다. 정부 기준에 따르면 빚 탕감 대상은 총 159만명으로, 원금 규모는 총 6조2000억원에 달한다.

금융위원회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채무자의 소득과 자산을 꼼꼼히 심사해 채무 탕감 대상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중위 소득 60% 이하(1인가구 기준 월 소득 99만원 이하)이며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는 경우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채무가 탕감된다. 10년 이상된 자가용이나 1톤 이하의 영업용 차량 등 생계형 자산은 재산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 기준에 따르면 159만명 중 약 절반 가량인 80만여명이 장기연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채무 탕감이 빚을 져도 갚지 않고 버티면 나라가 알아서 해준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채무 탕감에 드는 재원을 세금이 아닌 금융권의 출연금 및 시민사회 기부금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혀, 정부가 금융권의 팔을 비틀어 생색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 개요. <자료=금융위원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중소기업 지원이나 서민 금융지원에는 항상 도덕적 해이 시비가 뒤따른다”며 “그런 문제보다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필요성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이어 “자기 힘으로 도저히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방치한다는 것은, 이런 고통에 가까이 가보지 않은 여유있는 사람들의 또다른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융위 발표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 채무자(약 83만명)의 약 46%는 중위소득 40% 이하로 1인가구 기준 월 소득이 66만원 이하인 극빈층에 해당한다. 또 미약정 채무자 중 30%는 기초생활수급자, 60세 이상 고령자 등 취약계층이다. 당장 생계유지조차 위태로운 이들에게는 몇 백만원의 채무조차 상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즉, 이번 장지소액연체자 지원대상은 대부분 상환능력이 있음에도 채무를 방치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 채무자들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상환능력이 없어 장기연체에 늪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또한 금융권 팔비틀기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장기 부실채권의 양산에 금융권의 책임도 크다는 반박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권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 공격적으로 대출상품을 판매하면서 부실채권이 양산된 만큼 금융권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부채 상황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69%로, 2008년 전지구적 금융위기 시 미국의 143%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또한 금융권이 상환 가능성이 낮은 부실채권(NPL)을 대부업체에 싼 값에 매각하면서 장기연체자들의 회생 가능성이 봉쇄돼왔다는 지적도 있다. 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은행이 헐값으로 내놓은 부실채권을 구입한 추심업체들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소멸시효를 연장하고 있기 때문.

대표적인 것이 ‘지급명령’이다. 민법상 금융기관 대출은 최종 상환일로부터 5년이 지난 경우 상환 의무가 만료된다. 하지만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이라 하더라도 추심업체가 법원에 채권자 ‘지급명령’을 신청하면 채권자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을 통보받은 채무자가2주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소멸시효는 자동으로 10년 간 연장되기 때문.

채무자들에게 부채의 일부라도 갚으라며 설득하는 것도 소멸시효를 연장하는 한 방법이다. 채무자가 추심업체의 압박으로 부채의 일부를 상환하는 경우 채무 변제 의지가 있다고 판단해, 소멸시효가 다시 10년 간 연장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2008년 이후 10조원 이상의 규모로 확대된 부실채권 시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정부의 이번 대책도 과거 정권처럼 일회적인 선심성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위는 매입채권추심업자의 진입규제를 현행 자기자본 3억원에서 자기자본 10억원, 상시인력 5인 이상으로 강화하고, 추심업자가 부실채권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는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할 방침이다. 또한 소멸시효 연장 시 채무자의 상환능력 심사를 의무화하고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매각 및 추심을 금지하는 법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금융위는 부정 감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액 연체로 장기간 추심 고통에 시달려온 취약계층 채무자' 지원에 집중하고 재산이나 소득 등 상환능력에 따른 채무감면 원칙을 지킨다는 방침이다. 부정감면자에 대해서는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해 최장 12년간 신용거래상 불이익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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