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9일 새벽 탄도미사일 실험을 감행했다. 사진은 지난 7월28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실험 관련 영상.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북한이 29일 새벽 미사일 실험을 감행했다.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은 기존보다 높은 고도를 기록해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29일 오전 3시17분경 평안남도 평성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고각으로 발사된 이번 미사일은 최고 고도 4500km, 비행거리 960km를 기록하며 50분간 비행한 뒤 동해상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실험은 올해 들어 16번째,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11번째이며 75일만이다.

북한 미사일의 세부 제원에 대한 구체적 사항은 현재 공개되지 않았으나 비행거리를 고려할 때 지난 7월 두 차례에 걸쳐 발사된 ‘화성-14형’과 동일한 것으로 추측된다. ‘화성-14형’은 1단 추진체로 구성된 ‘화성-12’형을 2단 추진체로 개량한 미사일로, 액체연료를 사용하며 약 9000km 이상의 비행거리를 가지고 있다. 지난 7월 4일과 28일, 두 차례의 실험에서 ‘화성-14형’은 각각 최고 고도 2802km, 3700km, 비행시간은 각각 37분, 47분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고도의 2~3배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지난 7월에 발사한 미사일의 사거리는 최대 8400km~1만1100km에 달한다. 알래스카를 비롯해 미국 서부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의 경우 최대 사거리가 1만3000km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 본토 전역에 대한 타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발사지역과 워싱턴 D.C.와의 거리는 약 1만1000km다.

미국 ‘참여과학자연맹’(UCS)의 데이비드 라이트 국제안보프로그램 공동국장은 28일(현지시간) 연맹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만약 발표된 수치들이 정확하다면, 고각이 아닌 정상각도로 발사했을 경우 비행거리는 1만3000km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는 지난 7월 두 차례의 고각 발사 실험 기록보다 훨씬 긴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트 국장은 이어 “이번 미사일은 워싱턴에 도달하기에 충분한 사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미 대륙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북한이 이번 실험에서 이전보다 향상된 최고고도와 비행시간을 기록한 것에 대해, 개량된 2단추진체의 성능이 확인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실험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북한이 미 동부 해안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과, 더 높은 추진력을 가진 2단계 추진체를 확보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CNS) 시어 코튼 연구원ㄷㅎ 이에 동의하며 “내 기억이 맞다면 북한은 몇 주 전부터 새로운 엔진을 실험해왔다. 첫 두 화성-14형 실험의 2단계 추진체 연소 시간도 매우 길었다. 아마 다른 엔진의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비확산연구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연구원도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비행시간이 50분이라는 것은 ICBM이라는 것을 시사한다”며 “또 다른 '화성-14형' 시험 발사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 능력을 갖췄다고 확신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한다. 미사일은 탄두 중량에 따라 비행거리가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핵탄두는 약 500kg 정도다. 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어느 정도 무게의 탄두가 장착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라이트 국장은 “얼마나 무거운 탄두가 실렸는지 모르겠지만, 비행거리가 증가한 것을 고려할 때 무게가 매우 가벼운 가짜 탄두가 실렸을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긴 거리를 핵탄두를 장착한 채 비행할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문은 재진입기술의 확보 여부다. 일반적으로 ICBM은 대기권 이상의 고고도에서 목표를 향해 낙하하기 때문에, 대기권 재진입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열에서 탄두를 보호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지난 7월 있었던 두 차례의 실험에서는 부서진 탄두가 발견되며 북한이 아직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이번 실험으로 북한이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탄두의 정밀 유도 제어와 화학적 삭마 등 재진입 기술을 검증하려면 정상 각도로 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고각 발사한 걸 보면 아직 북한이 재진입체 기술을 시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거리보다는 야간에 이동식 발사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점에 주목하면서, 북한이 실전 상황을 가정한 기습공격을 훈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간·이동식 발사의 경우 미국이 선탐지를 통해 미사일 발사를 막기가 어렵기 때문. 나랑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번 북한 미사일 실험의 작전상의 함의는) 야간 발사가 준비성, 생존성, 침투성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또한 “발사 위치와 시간 등 모든 것이 기습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이번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오전 8시30분부터 20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굳건한 한미연합방위태세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한편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계속해 나감으로써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나가자”는데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사일 발사로부터 2시간30분 후 미 의회 여야 지도부 회합에서 “조금 전 북한에서 미사일 1기가 발사됐다. 내가 말할 것은 우리가 이를 처리할 것이라는 것 뿐”이라며 “(대북 접근법에)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또한 28일 성명을 통해 “미국은 비핵화, 그리고 북한의 호전적인 행동을 종식하는 평화적인 길을 찾을 것”이라며 여전히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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