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문현근, 김종인 등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들이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을 만나 정기상여금과 교통비 중식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어야 한다는 어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관련해 경영계와 노동계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정기상여금의 산입 범위 포함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상임부회장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에서 “정기상여금·숙식비 등 근로자가 지급받는 임금 및 금품을 모두 산입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시키는 방안을 공표한 상황에서, 상여금·복리후생비를 비롯한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한 현 규정은 기업에 지나친 부담이라는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김 부회장의 주장이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안의 기존 취지와 반대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상여금, 교통비, 식비와 같은 기타 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동계는 또 이미 일부 기업들이 최저임금 위반을 피하기 위해 상여금을 기본급화하고 있다면서, 노동자 동의 없는 임금체계 개변은 기업들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 최저임금 계산은 어떻게?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지급받는 임금 중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매달 근무한 시간으로 나눠 계산된다. 따라서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항목의 비중이 클수록 최저임금을 위반할 확률도 높아진다.

현행법상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임금 항목은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외의 임금 ▲소정의 근로시간 또는 소정의 근로일에 대하여 지급하는 임금 외의 임금 ▲그 밖에 최저임금액에 산입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임금 등 세 가지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상여금의 경우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에 걸친 해당 사유에 따라 산정하기 때문에, 매월 분할지급 하더라도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연간 600%의 상여금을 매달 50%씩 나눠 지급하더라도 최저임금 계산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상여금 비중이 큰 일부 기업에서는 평균 이상의 연봉을 지급하더라도 최저임금을 위반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김 부회장은 “근로자에게 연봉을 4000만원 넘게 지급하는 기업들도 최저임금 위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정기상여금과 기타 복리후생비의 비중이 절반 이상이고 월 근로시간이 240시간 이상이라면, 이 근로자는 4000만원의 연봉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셈이 된다.

 

◇ 지나치게 높은 상여금 비중

일각에서는 상여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한국의 비합리적 임금체계가 이번 논쟁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애초에 상여금은 기업의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는 ‘이익분배금’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으나, 국내에서는 점차 고정 급여화되면서 비중도 커졌다. 이는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요구에 기업들이 기본급보다 상여금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 원인이다. 기본급이 인상될 경우 통상임금의 1.5배로 계산되는 시간외근무수당도 같이 상승하지만, 상여금으로 임금인상분을 대체할 경우 이러한 부담이 사라지기 때문. 근로자 입장에서도 상여금 비중이 높으면 세금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업 측의 제안을 수용해왔다.

문제는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상여금을 통해 임금인상 요구에 대응하다보니 그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승복 전문위원이 지난 2010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 노동비용 중 상여금 비중은 19.9%(2009)로 미국(2010) 7.6%, 영국(2004) 7.0%, 독일(2004) 9.8%, 프랑스(2004) 4.2%에 비해 매우 높았다. 한국 상여금 제도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일본(2006)조차도 17.4%로 우리나라보다는 낮은 편이었다.

전체 업계로 확대해도 상여금 비중은 매우 높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총 노동비용 대비 상여금 및 성과급 비중은 2015년 15.2%에서 2016년 15.5%로 소폭 상승했다.

 

◇ 상여금이 최저임금 산입되면 누가 피해?

김동배 인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2013년 발표한 ‘통상임금과 임금구성체계 합리화 방향’에 따르면 상여금 비중은 사업체 규모와 비례해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2년 기준 5인 미만 기업의 특별급여(고정상여금+변동상여금) 비중은 3.6%에 불과하나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23.1%로 큰 차이를 보였다. 김 교수는 또 호봉제가 도입된 업체일수록 고정상여금을 지급할 확률이 호봉제 없는 업체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밝혔다.

결국 상여금 비중은 규모가 크고 안정적으로 호봉제를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고임금 근로자일수록 높고, 호봉제 없이 운영되는 영세업체의 저임금 근로자일수록 낮다. 따라서 경영계 요구처럼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산입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주로 대기업에 근무하는 고소득자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8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동부의 고용실태 조사 자료를 분석해보면 임금소득 하위 20% 계층은 대부분 임시·일용직들로 상여금이나 수당이 거의 없다”며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산입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위원은 이어 “저임금 노동의 해소라는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 비합리적 임금체계 간소화가 최우선

전문가들은 상여금의 최저임금 산입 자체는 최저임금 상승안의 취지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서, 이번 기회에 복잡한 국내 임금체계를 합리화·간소화해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김동배 교수는 “모든 조건과 연봉이 같지만 고정상여금이 다르다고 초과근무시간당 임금도 달라지는 것은 정당한가”라고 반문하며 “(고정상여금) 일정 부분을 이익배분형 성과상여금으로 전환하고 남은 고정상여금은 말끔하게 기본급으로 전환하여 임금구성을 간소화”하자고 주장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또한 지난 9월 경향신문을 통해 “전체 급여에서 기본금 비중이 50%에 불과한데 이를 70% 정도로 높이고, 상여금과 수당 비중을 줄이는 임금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관련된 실무자들도 상여금의 최저임금 산입에 대체로 긍정적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8월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또한 지난달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기상여금과 현금으로 주는 고정 교통비·식비는 (최저임금)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와 실무자들이 모두 경영계 의견에 동조하고 있어, 김 부회장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주장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