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22일 미국의 삼성전자, LG전자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권고안 관련 민관 공동 대응 방안 마련 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권고안을 트럼프 행정부에 제출하면서 국내 수출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온 보호무역 행태를 볼 때, 세탁기뿐만 아니라 타 업계에도 수입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의 수입규제 방안은 크게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의 세 가지다. 반덤핑관세는 특정 품목을 적정가격 미만으로 판매해 미국 산업이 피해를 입을 경우 부과되며, 상계관세는 수출국이 특정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산업이 피해를 입을 때 부과된다. 세이프가드는 단기간 내 특정 품목의 급격한 수입 증가로 미국 산업이 피해를 입을 경우 부과되는 관세, 수입물량제한, 국내산업 금융지원 등의 조치를 말한다.

이 같은 수입규제 방안의 적용 여부는 미 조사당국의 재량에 달려 있다. 조사당국은 피소업체가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자료를 충분하게 제출하지 않거나(AFA), 수출국의 시장 상황이 비정상적이어서 피소업체가 제출한 가격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PMS) 관세를 부과하거나 가격을 재산정하는 등의 보호무역 조치를 취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인 2015년 무역특혜연장법(TPEA)을 통해 조사당국의 AFA, PMS 적용 권한을 확장하며, 수입규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규제 강화가 실질적인 규제 건수 증가로 이어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다.

현재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고 있는 규제는 조사 중인 8건을 포함해 총 31건이다. 이중 반덤핑관세가 22건, 반덤핑·상계관세가 7건이며 이번에 세탁기품목에 적용된 세이프가드도 2건이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수입규제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 기준 미국의 한국 대상 수입규제는 총 23건이었으나, 올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8건(약 35%)이나 늘었다. 올해 전 세계의 한국 대상 신규 수입규제가 24건임을 감안하면 미국이 1/3을 차지하는 셈이다.

31건의 수입규제 중 20건은 철강·금속분야에 관한 것이나, 이후 지난 6월 이후 원추롤러베어링, 단섬유, PET 등에 대한 반덤핑조사가 시작돼 점차 규제 범위도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태양광·철강업계가 미국의 수입규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ITC는 지난 13일 한국산 태양광 모듈에 대해 4년간 최대 35%의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물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권고안을 채택할 경우 국내 태양광업체들의 수출 감소는 불가피하다.

철강업계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시행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법안은 특정 품목의 수입이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다. 철강제품의 경우 군수·통신산업에 필수적인 품목이기 때문에, 수입비중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세이프가드 발동 등의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수입규제 움직임으로 인해 정부와 업계도 대응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우선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의 첫 피해자가 된 삼성·LG전자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내 공장 설립 등 대미 투자를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대미투자를 통해 양 사의 미국 내 고용창출효과를 부각시켜 여론전을 유리하게 이끌어보겠다는 전략이다.

정부도 설득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보는 지난 22일 “(내년) 2월 초 미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정부와 업계는 적극적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 주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규제조치가 불가피할 경우에도 극단적인 규제안이 채택되지 않도록 우리 측 입장을 적극 알릴 방침이다.

최후의 방안은 WTO 제소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8개국 공동으로 미국의 철강제품 세이프가드를 WTO에 제소해 협정 위반 판결을 받아낸바 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WTO 판결에 따라 예정보다 1년 앞당겨 세이프가드를 철회했다. 강 차관보는 이날 “(내년) 2월에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결정되면 국제규범 위배 여부를 검토한 이후 WTO 제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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