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31차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트럼프 대통령(가운데)이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왼쪽),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오른쪽)과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참석을 마지막으로 12일간의 아시아 순방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태평양함대 방문을 시작으로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5개국을 방문해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의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기존 동맹국들과의 협력적 관계를 재확인하고 무역수지 개선과 관련해 중국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기대보다 잘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국제회의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해 미국의 경제적 고립을 초래했다는 비판적인 평가도 있다. 본지는 트럼프 아시아 순방을 성공과 실패로 평가하는 두 입장을 되짚어봤다.

 

◇ 성공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의 주요 목적은 북핵문제와 관련된 국제협력과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이라는 두 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일본 등 기존 동맹국들과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투자 약속을 이끌어내면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북한문제에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큰 난제는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며 이견을 보여 온 문재인 대통령과의 의견 조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 등 과격한 발언으로 북한을 압박했던 기존의 강경한 태도를 버리고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지만, 군사적 옵션을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며 외교적 해법에 중점을 뒀다. 비록 날씨 문제로 취소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DMZ 방문을 계획할 정도로 북한문제에 있어서 한미 공조가 확고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중국 방문을 앞두고서도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 협조를 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에 있어서 중국이 국제사회와 의견을 함께한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무역수지개선과 관련해서도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규모를 약속받았으며, FTA 재협상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개선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 방문에서는 약 2500억 달러(279조원) 규모의 투자 및 구매 협약을 체결하며 성과를 거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이번 협약에는 천연가스 개발, 미중 합작펀드 조성, 반도체, 자동차, 항공기 수입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됐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방문일정을 마친 뒤, 외국인의 중국 은행에 대한 지분규제를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금융시장 개방 조치도 발표됐다. 중국의 금융시장 개방은 미국이 그동안 줄기차게 중국에게 요구해왔던 사항이다. 

 

◇ 실패

한국과의 대북 공조 확인, 중국과의 무역수지 개선 등 주요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순방을 성공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북한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을 뿐, 실질적인 대북 압박 강화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지난 1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보니 글레이저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와 시진핑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 한 것은 중요하나,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존박 선임연구원 또한 “북한 내 불안정 증가를 우려해 중국이 최대한의 대북 압박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대북 정책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고 설명했다. 

무역과 관련해서는 중국과의 대규모 투자협약 체결에도 불구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며 대외 신뢰도를 크게 하락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APEC 정상회의에서 “이곳 모든 이들이 자국을 우선하듯이 나는 항상 미국을 우선으로 할 것”이라며 “미국은 더는 만성적인 무역 관행을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진핑 중국 주석은 “경제적 세계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 모두에게 더 개방하고, 더 포용적이고, 더 균형되고, 더 평등하고, 더 호혜적이어야 한다”며 개방을 강조해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필리핀 드라살대학의 리처드 자바드 헤이다리안 정치학 교수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발언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수십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가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 추진됐던 TPP를 탈퇴하는 등 다자무역주의를 반대하고 무역장벽을 높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 헤이다리안 교수는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지원하며 아시아 내 다자간무역체계를 조성하려는 시진핑 주석의 노력으로 인해 미국의 헤게모니가 중국에게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시아 대선 개입 부정과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국내 정치에서 반대여론을 키운 것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기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지적하며 “전임 정권의 무능을 비난하지 중국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미국 민주당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척 슈머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는 시진핑의 애완견”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11일 베트남에서 있었던 “푸틴을 믿는다”는 발언 또한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미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는다”며 전 미국 정보당국 관계자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논란을 일으켰다. 해당 발언에 대해 오바마 전임 정부의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은 12일(현지시간) CNN방송에서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한 것은 명백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의아하다”고 반박했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장 또한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푸틴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푸틴은 트럼프 대통령을 조종 가능한 인물로 보고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몇몇 성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선물보다는 숙제가 많았던 일정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투자협약을 최대 성과로 내세우며 이번 아시아 순방을 성공적인 일정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강화를 용인하고 불필요한 발언으로 국내 여론을 등돌리게 만드는 등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 후 차가운 여론에 직면해 순탄치 않은 일정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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