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이천수(32·인천유나이티드)가 '인천의 아들'로 새로 태어났다. '1381일'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인천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이천수는 31일 오후 4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2013 4라운드 대전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7분 구본상과 교체 투입돼 복귀전을 치렀다.

비록 팀은 1-2로 석패했지만 4년(1381일)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온 이천수는 흘러간 시간을 무색케 할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는 살아있었다.

이날 38분을 소화한 이천수는 후반전 인천의 공격을 이끌었다. 측면에서 날카로운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뒤흔들었고 프리킥, 코너킥 등 세트피스 상황에서 모든 킥을 전담했다.

후반 19분에는 단독 드리블로 수비수 1명을 따돌린 뒤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오른발 중거리슛을 시도하기도 했다. 공이 뜨며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그의 개인기와 스피드는 여전했다.

이후 대전의 수비진들은 이천수가 공을 잡으면 집중 견제에 나섰다. '끝판왕'으로 불렸던 이천수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한국 최초로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 진출을 이뤄냈던 '특급 스타'의 복귀에 인천축구전용구장도 들썩였다.

이날 인천 홈구장에는 이천수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1만103명의 팬들이 관중석을 메웠다. 개막전도 아닌 두 번째 홈경기에서 이렇게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드컵 열기와 맞물렸던 지난 2010년 1만72명의 관중 기록을 3년 만에 뛰어넘었다.

아쉬운 패배가 옥에 티로 남긴 했지만 축구스타를 품에 안은 인천과 인천 축구팬들은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남은 시즌 성적과 흥행 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을 수 있게 됐다.

'그라운드의 악동', '탕아', '풍운아' 등 예전의 별명들을 모두 떨쳐내고 인천에서 새 출발을 알린 이천수는 "다시는 운동을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팬들의 성원과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이렇게 그라운드에 돌아오게 됐다"며 "오랜만에 듣는 팬들의 환호를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정말 그리웠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복귀전을 치른 소감을 밝혔다.

긴 공백기를 가졌던 선수 치고는 준수한 복귀전 경기였다. 하지만 '이천수'라는 이름 석 자에 팬들이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스스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천수는 "아직 몸 상태가 100%는 아닌 것 같다. 경기적인 면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 경기씩 치르다 보면 몸도 자연스레 올라올 것이다. 김봉길 감독님이 경기 끝나고 '4경기가 진행됐을 뿐이다. K리그 클래식 이제 시작이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리그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며 남은 시즌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때 축구계의 '사고뭉치'였던 이천수는 몰라보게 성숙해져 있었다. 지난 아픔의 시간들이 약이 됐다. 본인 스스로도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고 공언했다.

이천수는 "오늘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상대 수비수에게 얼굴을 한 대 맞았다. 예전 같았으면 화를 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감정적인 부분도 잘 조절하기로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화를 내지 않고 페어플레이를 할 것이다"며 "나도 이제 고참이 됐다. 마인드적인 면에서도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예전과 같은 행동으로 팀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다짐했다.

30대에 접어든 이천수도 이제는 팀 내 중고참이 됐다. 그는 자신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이천수는 "인천에서 내가 딱 중간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고참들과 후배들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며 "타 팀에서는 내가 고참급이었는데 인천에서는 (김)남일이형과 (설)기현이형 덕분에 많은 짐을 덜고 있다. 팀에 잘 적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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