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이랑은 어린 시절에 만났죠. 청소년 시절에 현식이는 윤형주 같은 미성, 저는 송창식 같은 저음을 흉내내며 같이 노래도 불렀어요. 현식이가 죽었다는 것은 그가 죽은 후에나 알았죠. 그 당시 한창 청량리에서 밥퍼주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서울시뮤지컬단이 12월 18~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송년 뮤지컬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은 '밥퍼' 최일도(55) 목사의 동명 에세이집이 바탕이다.

첫눈에 반한 5년 연상의 로즈 수녀에게 빠져 자살까지 기도하는 등 '괴짜 목사'로 통하는 최 목사의 인생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최 목사의 친구인 '내 사랑 내 곁에'의 가수 김현식(1958~1990)을 비롯해 청량리 사창가 '588'의 매춘부 '향숙'과 '거지대장', '황인걸' 등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가 극의 흐름에 윤활유로 작용한다.

1996년 출간돼 120만부가 팔린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에 대한 영화화 요청이 그간 쇄도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감동적인 요소가 있다하더라도 낯간지러운 일"이라며 모두 거절한 최 목사는 그러나 유인택(57) 서울시뮤지컬단장의 뮤지컬화 요청은 수락했다.

"17년 전 제 책을 읽었던 30~40대들은 가난을 아는데 지금의 청소년들은 가난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지금 역시 빈민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말이죠. 고층빌딩이 올라갈수록 그림자도 길게 드리우는 법입니다. 그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뮤지컬을 통해 청소년들이 알았으면 했습니다."

1988년 청량리 뒷골목에서 배고파 쓰러진 노인에게 끓여준 라면 한 그릇으로 시작된 최 목사의 '밥퍼나눔활동'은 무의탁노인 등 도시빈민들에게 600만 그릇의 무료 급식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제3세계의 빈민들에게까지 나눔의 기회가 확대됐다.

최 목사가 이 운동을 순탄하게 진행한 것만은 아니다. 시작한 지 5년이 지났을 무렵 3박4일 간 청량리에서 도망친 적이 있다.

"청량리역에서 다짜고짜 경춘선을 탔어요. 그런데 표가 없었던 지라 용문역에서 쫓겨났죠. 밥도 못 먹고 용문사 계곡에서 울부짖고 있는데 산 속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짓는 노인이 있는 거예요. 그 노인이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다 밥 한그릇을 주더니 청량리로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밥 나눠주는 최일도 목사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를 만나라는 이야기였다.

"최일도 목사를 아느냐고 했더니, 산에서 약초를 캐 파는 분이었는데 경동시장을 가다 청량리를 지나다 최일도 목사에 대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일도가 최일도를 만나러 가게 됐어요. 청량리에 가자 노숙인들이 밥퍼 돌아왔구나 하더라고요. 그 때부터 사명이 보이기 시작했죠. 하하하."

최 목사는 뮤지컬을 좋아한다. 자신이 이끄는 기독교봉사단체 '다일 공동체' 홍보대사인 윤석화, 박상원의 작품을 비롯해 '미스 사이공'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등 4대 뮤지컬은 다 봤다.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을 청량리 노숙인들이 단체관람하는 등 이번을 계기로 문화 향유기회가 없는 빈민들도 그런 혜택을 누렸으면 한다"고 바랐다. "큰 것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메시지가 뮤지컬에 담겼으면 좋겠어요. 이를 통해 꿈을 잃은 젊은이들이 용기를 냈으면 합니다."

극 초반에는 부인 김연수(60)씨에 대한 무모하지만 강렬한 최일도의 사랑이 중점적으로 그려지며, 후반부에는 험난하고 척박한 588에서 밥퍼활동이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뮤지컬 '폴링 포 이브'의 김덕남씨가 연출한다. 임현수와 김영완 등 뮤지컬배우와 홍은주 등 서울시뮤지컬단원들이 출연한다. 3만~12만원. 02-39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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