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기업 '비자금' 등 비리와 부패 쫓아 연결고리에 있는 정치권 압박 지적

【서울=이코리아】이코리아 =  과거 군사독재 시절 검찰이 불온 좌익 척결을 내세우던 '공안정국'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검찰이 대기업의 '비자금' 등 비리와 부패를 쫓아 그 연결고리에 있는 정치권을 압박하려는 '사정정국'이 펼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디서 본 듯한 모습, 영락없는 '데자뷔(deja vu)'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2010년 10월 2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어느 날과 흡사하다. 당일 이 전 대통령은 '경찰의 날' 치사를 통해 "만연해 있는 권력비리, 토착비리, 교육비리를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한다"면서 사정 정국의 본격적인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구여당에 대한 수사'라고 하면서 친절하게도 수사 방향까지 제시했다.

그때와 지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말한 것과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문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 그리고 MB정부보다 박근혜 정부에서 그 시기가 좀 더 앞당겨 졌다는 것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과거 공안정국이 범야권의 압박이라는 정치적 동기에 한정돼 있는 반면 요즘 사정정국은 한쪽으로는 '머리가 너무 커져 버린' 대기업을 길들이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의 '떡고물'을 받아먹은 정치인들의 발을 묶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고, 기획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사정정국이 한꺼번에 여러 대기업을 향해 동시다발적이고,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포스코 비자금, 도대체 얼마?...1000억원대 넘을 가능성도 있어

업계와 검찰에 따르면 17일 현재 공식적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은 비자금 조성과 전 경영진 비리 의혹의 포스코,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 그룹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의 신세계, 그리고 방위사업 비리,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 담합비리 등으로 엮여 있는 SK 등이다.

과거와는 달리 3개 그룹에 대해 동시에 수사가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이번 사정을 간단히 끝낼 분위기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뿐만 아니라 예전 같았으면 수사 상황에 대해서 간혹 흘러나오던 이른바 '누설'도 일체 없어 법조계에서도 사뭇 비장감마저 돌고 있다.

그간 상황을 재구성 해보자. 포스코건설이 국내외 전체 사업 현장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시작한 것은 2014년 5월이다. 감사 착수 후 3개월쯤 지난 2014년 7월 말 황태현 포스코건설 사장이 1차 보고를 받았다.

▲ 포스코센터

동남아사업단장 A상무와 현장총괄소장 B상무가 현지 공사 관계자들과 짜고 하도급 업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수법으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 용도에 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포스코건설 본사는 베트남 하노이에 4개, 호찌민에 1개, 앙카잉에 2개의 현장을 각각 운영하는 한편 그 외에도 포스코건설 베트남법인 소속의 10여개 중소 규모 현장이 있었다. 이들 현장을 관리하면서 일부는 관행적으로 관계 업체들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개인적으로 비자금을 운용한 것이다.

내부자들의 진언을 모아 상황을 종합하자면, 황 사장은 '조용한 처리'를 주문했다. 바깥에 알려지지 않게 내부 징계로 마무리하라는 뜻이다. 황 사장은 이어 포스코 권오준 회장에게 보고한 이후 작년 8월 말 “감사를 중단하고 해당 임원 2명만 인사조치하는 것으로 종결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공금횡령 등 부정에 연루된 임직원들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해야 한다는 사내 규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업무상 과실에 따른 단순 보직해임으로 사건을 축소했다. 서둘렀을 뿐 아니라 공식화되는 것을 철저하게 꺼린 정황이다.

검찰은 이와 같은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감사 내용이 공개되면 비자금의 용처를 쫓는 수사로 이어질 수 있어 서둘러 무마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13일 포스코건설 압수수색 이후 재무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10명 안팎의 임직원을 소환해 비자금 조성인지 여부와 해당 임원에 대한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검찰 등에 고발하지 않은 이유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밝혀낸 포스코건설 비자금 규모는 현재까지는 100억원대라는 게 검찰 관계자는 물론 포스코 측 판단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조선일보가 입수한 포스코 내부 감사보고서에는 107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같은 날 MBC 보도에 따르면 이와는 별개로 인도네시아에서도 100억원대 비자금이 조성됐다. 포스코의 한 하청 건설업체가 용역비를 부풀려서 만든 100억 원대 비자금 중 10억원 정도가 포스코 최고위층 임원에게 전달된 정황을 수사당국이 확인했다고 한다. 이것만 합해도 비자금 규모는 벌써 200억원이 넘어선다.

게다가 포스코P&S만 해도 매출을 부풀려 1300억원대 세금을 포탈한 의혹에 대해 수사를 받고 있다. 그중 비자금이 얼마나 조성됐는지 파악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욱이 수사가 다른 포스코계열사까지 확대될 경우 비자금의 액수는 1000억원대가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포스코건설 비자금은 누구에게 얼마나 전해졌나?

이번 포스코건설 비자금 사건의 연원을 따져보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정동화 전 포스코그룹 부회장이다. 포스코건설 베트남법인에서 횡령과 비자금 주로 조성된 시기는 황 사장의 전임자인 정 전 부회장이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재직하던 때와 일치한다. 정 전 부회장은 2009년부터 포스코건설 사장을 맡아오다가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정 전 부회장은 2013년 11월 정준양 당시 포스코 회장이 국세청의 포스코 특별세무조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포스코 회장 자리에 도전했으나, 권 회장에게 밀려났다.

2선으로 후퇴하기는 했지만 정 전 부회장은 MB정부 실세들과 친분을 과시해 온 점이 검찰의 안테나에 포착됐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나 실세였던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등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전해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박 전 차관이 정 전 부회장을 통해 포스코 인사에 개입했다는 설이 파다할 정도였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이 포스코와 MB정부 실세들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정 전 부회장의 손발 노릇을 했다고 여겨지는 포스코건설 K씨와 J씨를 소환, 조사했거나 조사할 계획이다.

당연히 그 비자금의 '종착역'은 정‧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단순 횡령·배임에서 정·관계를 뒤흔들 '금품 로비'나 '포스코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는 폭발성 사건일 수 밖에 없다.

그 뇌관의 핵심인물인 정준양 전 회장과 정동화 전 부회장의 소환도 임박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법조 관계자는 "현재 소환 조사를 받은 전현직 포스코 임직원은 10명 안쪽이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임원 등 2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만큼 소환 조사 인원의 최소치는 이들 20여명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권 회장은 16일 "검찰 수사와 관련해 국민과 주주들에게 심려를 끼쳐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 "검찰수사에 성실히 협조해 조기에 의혹을 해소함으로써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굽혔다.

현재 권 회장이 할 수 있는,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다. 포스코 관계자는 "아직 수사가 한참 남아 있는 줄 안다"며 "그러나 검찰이 개별적인 소환과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그룹 전체적인 상황을 아직 파악할 수 없다"며 검찰 수사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토로했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포스코 본연의 미래경영을 기획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 끝난 일에 검찰의 '뒤짐질' 당해 억울하다는 신세계

지금 재계의 수난은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포스코 이외에 다른 곳에서도 사정의 '난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6일 SBS의 메인 뉴스인 '8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주부터 신세계 총수 일가의 계좌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검찰이 주목하는 부분은 신세계그룹의 법인 당좌계좌에서 발행된 당좌수표가 물품 거래 대신 현금화된 경위다. 검찰은 현금화된 돈 가운데 일부가 총수 일가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 신세계그룹

검찰 수사의 초점은 당연히 대주주가 법인 재산을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여부다. 덧붙여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그 용처가 어디냐는 점이다.

신세계그룹의 이러한 자금 흐름은 지난해 금융 당국이 포착해 검찰에 통보했던 사안이다. 그동안 수사 진척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다시 꺼내들었나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 신세계그룹 측은 비자금을 조성한 적이 없다고 일단 발뺌했다. 신세계 그룹은 경조사비나 격려금 등 법인카드로 결제할 수 없는 부분의 지출을 위해 70억원 규모의 현금을 만든 것으로 정상적인 비용 처리라고 주장했다. 일면 타당한 점도 보인다.

또한 지난 1월 검찰 조사에서 관련 사실을 충분히 소명했다면서 의혹이 해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과 쓰임이라는 같은 맥락에서 70억원의 돈이 어디로, 어떻게, 어떤 이유로 흘러갔는지 검찰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세계그룹은 볼 멘 소리다. 한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벌써 끝난 일이라고 여겼던 일이 다시 불거져 당혹스럽다"며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룹 차원의 대응책 마련도 힘들다"고 했다.

◆ 얼떨결에 혹은 난데 없이 '두 차례'나 매 맞은 SK

SK그룹은 예상치 못한 '돌팔매'에 맞은 격이라는 표정이다. 지난 12일 검찰이 입찰 담합을 한 혐의로 SK건설에 대해 공정거래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고 이 사실은 16일 밝혀졌다. 공정거래법상 검찰총장이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최초 사례로 기록되는 특이한 일이다.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 담합사건에 연루된 SK건설에 대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의 수사를 위해서라고 검찰은 설명한다.

▲ SK그룹 본사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에 연루된 SK건설에게 이달 초 과징금만 부과하고 고발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SK건설 입장에서는 이렇게 과징금 부과로 끝날 줄 알았던 통상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고발요청권 행사를 검찰총장에게 건의했고 총장은 이를 행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지난 12일 공정거래위원장은 해당 건설사를 검찰에 고발하게 됐다. 검찰총장 직권으로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검찰이나 공정위 역사상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은 "담합을 먼저 제의하는 등 주도 여부, 실제 낙찰 여부, 공사규모, 조사협조 여부, 전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면서 "담합범죄 등 공정거래사범 근절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지난 14일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비리 의혹에 연루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과 함께 권모 전 SK C&C상무를 구속했다.

이들은 EWTS 도입사업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있다. 합수단은 이 회장이 애초 5100만달러(약 572억원) 규모인 사업비를 9600만달러(약 1077억원)로 부풀려 4600만달러(약 505억원)를 가로챈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EWTS 사업 규모가 9600만달러까지 늘어난 이유는 이 회장이 훈련장비의 국내화를 명목으로 금액을 추가했기 때문이라고 합수단은 설명한다. 이 회장이 사업 추진 당시 '국내 업체를 통해 자체적으로 EWTS시스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방사청에 제안해 연구개발비용을 더 받아낸 것이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한 국내 협력업체로 SK그룹 계열사 SK C&C를 추천했다. SK C&C는 EWTS 도입사업 협력업체로 참여, 다시 일광그룹 계열사인 솔브레인에 재하청을 주는 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합수단은 솔브레인, 일진하이테크 등 일광공영 계열사들이 EWTS 납품에 필요한 장비를 공급하기 위해 연구개발비를 받아놓고도 실제 연구개발은 하지 않고 자금을 횡령, 유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 과정에 개입돼 있는 SK C&C의 역할도 면밀히 살펴본다는 입장이이다.

일련의 이 같은 내용들이 권 전 상무 개인적인 비리인지 아니면 SK C&C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추후에 밝혀지겠지만, 만에 하나 SK C&C가 간여했다면, 그 불똥은 SK그룹 전체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SK그룹은 말을 아낀다. 아니 아낄 수밖에 없다 SK건설 일이야 일단 SK 계열사 자체에서 벌어진 일이라 빼도 박도 못한다. 하지만 SK C&C 권 모 전 상무의 방위사업비리 개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현재 회장께서 안 계신 상황에서 외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다"며 "그렇지 않아도 경기도 안 좋은 데다 그룹의 주요 부문인 정유사업도 업황이 안 좋은 시점에 이런 일까지 겹쳐서 일어나 난감하다"고 했다. 그리고 제발 아무 일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감추지 않았다.

◆ '은밀하고 위대하게' 계획된 '사정정국'

재미있는 점은 공교롭게도 SK건설이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날은 12일이었고, 일광그룹 이광규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도 12일에 이뤄졌으며, 이 회장과 권 전 SK C&C상무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도 12일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첫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바로 그날이다.

포스코그룹이나 신세계그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도 계획된 냄새가 솔솔 난다. 이 총리가 총리 자리에 오르고 적응 기간을 끝내자마자 이처럼 전 정권을 겨냥하고 나서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MB정권 사정 시나리오를 본격화하고 있다"며 "그 첫 번째 표적은 MB정권과 손잡았던 대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그룹 이외에 다른 그룹이나 분야, 어디까지 사정의 칼날이 노리는지 현재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수 1부는 최근 형사부와 조사1부에 흩어져 있던 자원외교 관련 각종 고발 사건을 모두 재배당 받아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만큼 앞으로 정권의 ‘희생양’이 '몇 마리'가 될 지는 끝나봐야 안다는 게 검찰 내부의 목소리다.

이런 류의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대규모 수사가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기획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대통령 지지율 30%까지 떨어진 국정동력의 재충전은 물론 가까이는 오는 4월 재보궐선거, 내년 총선에서 안정적인 정권 재창출을 위한 사전 포석을 깔고 펼쳐진 사정정국이라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번 수사가 기획된 것은 지난해 연말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그 배경으로 정윤회 문건 사태, 담뱃값 인상, 공무원 연금 개혁 등으로 떨어진 대통령의 지지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 내에서 친박계의 위상까지 위협받게 되고, 올들어 연말정산 사태에다가 경기 침체, 전세난 심화까지 길어지면서 ‘사정정국’이 무르익었다고 본다. 국민전환이 절실해진 정권은 가장 손쉽고, 그 효과가 큰 사정을 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몇몇 대기업과 정치인 일부를 속죄양 삼는 '사정정국'은 그만큼 후유증도 심각하다. 더욱이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 겉잡을 수 없는 '레임덕'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 대기업이 그나마 갖는 '한 줌의 경쟁력'마저 갉아먹는 위기의 상황이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대한민국은 '디플레이션'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는 ‘잃어버린 시간’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프랑스혁명 이후 혼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펼쳤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다. "공포를 통해 그들의 방종을 단속하고 사랑의 매로써 그들에게 미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또한 혼란을 틈타 곳곳에서 혁명을 뒤집으려 획책하는 사악한 반혁명 분자들을 철저히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공포정치를 단행했다.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에 세웠다. 그러나 결국 그도 역시 단두대에 의해 사라졌다.

정확히 5년 뒤 '살아있는' 정권이 '과거 죽은 권력'인 박근혜 정권을 사정정국으로 처단하는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knt@ekoreanews.co.kr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