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 표명을 위한 지난 21일 기자회견 내용을 놓고 여권 내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미 수일 전부터 예고됐던 회견이었던 만큼 당내에선 앞서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군사쿠데타와 유신체제 등 일련의 과거사 문제와 그에 따른 역사인식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는 '학습'을 했기때문에 더 이상 부친의 '그림자'가 박 후보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여론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진전된 입장'이 나와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랐다.

 그러나 박 후보는 이번 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나와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장학회 설립 과정 등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당 주변에선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박 후보의 기본인식과 그동안의 소통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 1995~2005년 10년 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엔 장학회 일에 일절 관여치 않고 있다"는 게 박 후보 측의 설명이다.

 박 후보는 이번 회견에 앞서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사진이 잘 판단해 줬으면 하는 게 내 개인적인 바람"이라며 사실랑 최 이사장 등의 자진 사퇴를 주문했으나, 최 이사장은 '사퇴 불가' 입장을 밝혔었다.

 때문에 박 후보 측은 "야당의 주장대로 장학회가 박 후보 소유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최 이사장이 계속 '버티기'로 일관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선 "박 후보 측이 정수장학회와 관련된 사항을 야당의 정치공세로만 간주하다 보니까 정교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박 후보는 이번 회견에서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민주통합당 등 야당의 각종 의혹 제기를 모조리 '대선용 정치공세'로 몰아세웠다.

 앞서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도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수장학회가 어떻게 설립되고 운영됐는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에게 알려진 것인데, 왜 지금 와서 의혹이 있는 것처럼 얘기가 되고 논란이 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박 후보 측은 이번 대선에서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일련의 과거사 문제가 앞 다퉈 불거지는 게 야권의 선거 프레임(구도)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거기에 일부 언론까지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그러다 보니 관련 대응 수위나 시기 등이 여론의 기대치나 예상치에 못 미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회견 다음날인 2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 조직본부 발대식을 통해서도 "야당이 계속 네거티브만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해 공격으로 끝난다"며 "대체 그것으로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주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당의 다른 관계자는 "박 후보가 사과를 하든 말든, 입장을 밝히든 않든 '선거에서 박 후보를 찍을 사람은 찍게 돼 있다'는 인식도 박 후보 측의 상황 판단과 민첩한 대응에 장애가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만 이뤄지지 않는다면 박 후보의 현 지지율만으로도 승리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혹여 박 후보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안에 대해선 직언(直言)을 아끼는 경향이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박 후보가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안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참모들의 관련 보고 등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와 함께 당 일각에선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해선 "다른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유신체제 하의 사건들에 대해서 다수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수장학회와 관련해선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故) 김지태씨 유가족 외엔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경우가 없고, 오히려 장학사업에 따른 수혜자가 많다는 점에서다.

 실제 박 후보는 전날 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1962년 우리나라가 정말 어려웠던 시절에 가난하지만 능력 있는 학생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어야만 인재육성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로 설립된 장학재단"이라며 "그 후 반세기 동안 연인원 3만8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어려운 환경에 있던 인재들이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난 우리 사회에 대한 정수장학회와 장학생들의 헌신과 기여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후보는 부일장학회 설립자 김씨에 대해 "4·19 때부터 부정축재자 명단에 올랐던" 인물이라며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연관성을 부인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또 "(김씨의 주식 헌납) 당시 부산일보와 MBC의 규모는 현재의 규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후 너무 건실하게 성장해 규모가 커지자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해 김씨 유족 측의 주식 반환 청구 소송이 MBC와 부산일보의 성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박 후보의 회견 내용만을 놓고 보면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비칠 수 있다"고 거듭 우려감을 표시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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