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이 지난달 25일 정식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인공지능(AI) 행원의 모습. 사진=NH농협은행
NH농협은행이 지난달 25일 정식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인공지능(AI) 행원의 모습. 사진=NH농협은행

[이코리아] ‘디지털 전환’이라는 과제에 직면한 은행들이 인공지능(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대출심사, 리스크관리와 같은 업무뿐만 아니라 대면업무까지 인공지능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공지능 행원 채용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다.

실제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5일 AI행원의 정식 직원 채용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MZ세대 직원들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AI행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활동뿐만 아니라 영업점에 배치돼 고객과의 대면업무 또한 담당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이미 지난달 말 기준 AI행원 72대를 66개 영업점에 보급했으며, 이를 내년 1월까지 200대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GS리테일과의 협업으로 편의점 GS25에 디지털 데스크를 개설한 신한은행은 AI행원을 통해 영업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KB국민은행 또한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본사 신관에 AI행원 체험존을 설치한 바 있으며, AI챗봇 ‘비비’를 통해 개인화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지난 4월 영상합성기술 스타트업 라이언로켓과 AI행원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물론 ‘AI행원’을 도입하기 전에도 은행은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오고 있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7월 금융권 최초로 AI를 통해 3분 내에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AI대출’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우리은행도 올해 들어 AI를 적용한 시장예측시스템, 개인화 마케팅 등의 서비스를 연달아 선보였다. AI가 대면업무에 활용되는 것은 오히려 기술 도입의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인공지능 도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디지털 전환’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두터운 사용자층과 축적된 빅데이터, 높은 IT 역량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빅테크의 금융권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기존 은행들도 대면채널이라는 경쟁 우위만으로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채널 비중이 점차 높아진 것도 대면업무를 AI로 대체해야 하는 이유로 작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7~2020년 은행의 비대면 채널 업무처리비중은 45.4%에서 65.8%로 급증한 반면, 창구 비중은 10%에서 7.3%로 하락했다. 은행으로서는 점포를 유지하고 직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AI행원을 활용한 무인점포로 대체하는 것이 비대면 채널 중심의 빅테크 금융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확실한 전략이라는 것.

이 때문에 많은 은행이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이 지난 5~8월 8개 국내은행(시중은행 4개, 지방은행 3개, 인터넷은행 1개)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미 7개 은행이 신용평가·대출심사·리스크모니터링 등의 업무에 AI를 도입하고 있었다. 챗봇이나 AI행원을 활용하고 있는 은행도 6개나 됐다. 특해 챗봇과 AI행원은 가장 많은 은행(6개)이 향후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은행의 AI 활용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1천만명이 넘는 이용자층을 확보해 오랜 시간 빅데이터를 축적한 빅테크와 달리 이제 막 마이데이터 사업을 시작한 은행은 상대적으로 혁신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데이터가 부족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은행이 IT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아직 빅테크에 비해 AI 관련 전문인력도 매우 부족한 상태다. 금융연구원 조사에서도 ‘데이터 부족’과 ‘인력 부족’은 ‘AI 도입 상 애로사항’ 1, 2순위로 꼽혔다. 

AI 도입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인 규제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금융분야 인공지능(AI)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금융사의 AI 활용과 관련된 책임·감독 범위, 위험관리정책, 영향평가 기준, 소비자 권리 등에 대해 대략적인 지침을 제시한 바 있다. 

은행은 금융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AI 활용에 따른 잠재적 위험을 자체적으로 평가·관리할 수 있는 역량도 함께 갖춰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규제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은 도입하고자 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편향성, 성능, 보안성, 잠재적 피해 가능성 등을 정례적으로 자체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조속히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활용에 따라 대면채널이 축소되면서 나타나는 금융취약계층 소외 및 고용 축소에 따른 비판 또한 은행이 대응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실제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신한은행 폐점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 모인 주민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층으로 비대면 서비스 활용에 익숙하지 않아 영업점이 사라지면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심각하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에 직면한 은행에게 AI 기술 도입은 피할 수 없는 과제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반발도 만만치 않다.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은행권이 금융취약계층 소외 및 규제리스크라는 문제에도 적절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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