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흐르는 발자국, 한지 먹물 아크릴, 50*50cm
이은주, 흐르는 발자국, 한지 먹물 아크릴, 50*50cm

 

그대는 이미 떠나고 
나는 지금 떠나네.

그대가 떠난 길로 
나도 떠나네.

함께 하던 
아침과 저녁의 길
빛과 향기의 길

그대 기쁨과 
내 기쁨이 
만나는 길 우로

이제는 
그대 슬픔과
내 슬픔이 만나네.

그대 홀로 떠난 길
나도 홀로 떠나네.

마음이 슬프거나 외로울 때, 나는 러시아 민요 ‘나 홀로 길을 걷네’를 안나 게르만(Anna German)으로 한 번, 스베틀라나(Svetlana)로 한 번을 연거푸 듣습니다. 노래의 곡조도 슬프지만 두 가수의 목소리는 얼음 위를 튕겨 나가는 햇살 같은 청아와 푸른 하늘 끝에서 배어 나오는 우수 같은 것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청아와 우수는 나의 슬픔과 외로움과 묘하게 겹쳐져 나를 위로합니다. 슬픔으로 슬픔을 견디는 격이지요.

아마 여러분들도 슬픔이 밀려올 때 기쁜 노래보다도 슬픈 노래가 더위 위로가 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12월입니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이기고 합니다. 종종 마음의 심연에서 퍼도 퍼도 줄어들지 않는 지하수 같은 슬픔이 오면 슬픈 노래를 들어보세요. 슬픈 노래를 허밍으로 부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나는 슬픈 시 한 편을 끄적이므로 슬픔 위를 담담하게 걸어갑니다.

‘이제는 / 그대 슬픔과 / 내 슬픔이 만나네. // 그대 홀로 떠난 길 / 나도 홀로 떠나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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