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들이 배터리사업 분할에 대한 반대투표를 인증하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홈페이지 갈무리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들이 배터리사업 분할에 대한 반대투표를 인증하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 주요 그룹의 과도한 사업 분할 전략이 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핵심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모으는 ‘쪼개기 상장’으로 모회자 주주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 14일 열린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 제16차 회의에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부 물적분할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4일 2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배터리 사업부와 석유개발(E&P) 사업부를 각각 분할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방식은 SK이노베이션이 신설법인 지분 100%를 소유하는 물적분할이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6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배터리사업부 물적분할 안건을 결의하고 연내 분할을 마무리해, 내년 중 신설법인의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의 사업분할 계획에 대해 “취지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배터리사업 등 핵심사업부문의 비상장화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소액주주들 또한 마찬가지다. 주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반대투표 인증글을 올리며 물적분할 반대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소액주주지만 반대투표하고 왔다”며 “회사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면 안된다”고 사업분할 계획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주주들이 이처럼 물적분할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는 모회사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핵심 사업부문의 성장을 위해 신규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해당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상장하는 것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다. 특히 물적분할은 신설법인에 대한 모회사의 지배력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 경영권에 대한 위협도 방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반면 모자회사가 동시 상장될 경우 모회사에 적용되는 주가 디스카운트로 인해 기존 주주들은 손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모회사의 기존 주주에게 신설법인의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인적분할과 달리, 신설법인의 주식을 모회사가 100% 보유하는 물적분할은 소액주주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주요 그룹들이 신규 재원 마련을 위해 사업분할·상장 전략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수는 지난 8월 기준 157개로 2015년(131개) 대비 19.8%나 증가했다.

SK그룹의 경우 지난 2018년 SK케미칼이 백신 사업부를 SK바이오사이언스로 분할하고, 2019년 SK이노베이션이 소재 사업부를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로 분할하는 등 주요 사업부문을 독립된 회사로 분리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LG그룹 또한 지난해 LG화학의 핵심 사업인 배터리 사업부를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독립시켰으며, 현대중공업그룹도 2019년 한국조선해양에서 사업회사를 분리해 현대중공업을 출범시켰다. 

물적분할 이후에는 대부분 증시에 상장해 신규자금을 모으는 작업이 진행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IET는 모두 청약 대박을 쳤고, 현대중공업도 최근 청약에서 56조원의 증거금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반면 분할 소식은 모회사의 주가에 대부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LG화학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 분할 소식이 공개되기 전날인 지난해 9월 15일 72만6000원에서 24일 61만1000원까지 주가가 약 16%나 하락했다. 지난 13일 장 마감 후 전력·스팀 등 유틸리티 사업부를 분할하겠다고 공시한 SK케미칼의 경우, 32만9500원이었던 주가가 다음날인 14일 29만6000원으로 하루만에 10% 이상 급락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과도한 ‘쪼개기 상장’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 분할 직후인 올해 1월 경제개혁연대는 “LG에너지솔루션이 IPO등의 방식으로 외부자금 조달하게 되면 기존 LG화학 주주들이 희석화에 따른 손실을 입을 수 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1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사업 분사 후 상장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한국의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통계적으로 자회사 상장 후 모회사는 해당 사업 가치의 일정 부분만큼 시가총액 상실을 겪고 있다”며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 후 재상장의 경우, 상장 이후 지분 평가액의 65% 정도가 할인되어 모회사 기업가치에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이어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가 누리는 이익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보상하기 위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최근에 자회사 분할 및 상장 이슈에 노출된 한국조선해양, SK이노베이션, 카카오의 경영자와 이사진은 투자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 성장을 위해 물적분할이 불가피하다면 주주환원 정책 또한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난 9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부 분할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도 “물적분할 후 기업공개는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 희석의 우려를 일부 희석시킬 수 있는 적절한 주주환원 계획이 필요하다”며 자기주식 소각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이어 “지배구조 개편의 정당성 이외 주주환원 계획이 명확한지의 여부도 주주권익 훼손 여부에 대한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라며 “신설법인(SK배터리)의 기업공개 전까지 SK이노베이션의 명확한 주주환원 계획이 공개되지 않으면, 해외 사례(블랙록 등)처럼 주주권익 보호 측면에서 이사회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와 이번 분할을 의결한 해당 이사의 재선임 안건과의 연계도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블랙록의 2019년 7월~2020년 6월 의결권 행사 내역을 살펴보면 '기후공시 부족'을 이유로 투자기업의 임원 선임 안건을 반대한 경우가 55건, 환경 관련 주주제안으로 경영진 선임 안건을 반대한 사례가 6건이 있었다. 블랙록 등 해외 투자자들은 임원 결격 사유를 이전보다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경향이 국내에도 퍼진다면, 주주환원 계획 없는 쪼개기 상장에 대해 모회사 주주들이 임원 선임 반대 등으로 강경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싱가포르 헤지펀드 메트리카 파트너스는 지난 8일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가치가 SK케미칼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지분 일부를 매각해 주주들에게 특별 배당을 실시하라고 요청했다. 반복된 쪼개기 상장으로 인해 높아진 주주들의 목소리가 주요 그룹의 계열사 분할 상장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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