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의연대와 DLF피해자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1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DLF 제재 관련 우리·하나은행 규탄 및 은행 경영진 해임 요청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정의연대와 DLF피해자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1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DLF 제재 관련 우리·하나은행 규탄 및 은행 경영진 해임 요청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인해 불거진 금융사 내부통제 부실 문제와 관련해, 금융권이 ‘자율규제’가 해답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당국의 개입은 줄이고 인센티브는 늘려 금융사의 자발적인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 반면, 금융사 이사회의 취약한 독립성 때문에 자율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6개 금융협회는 6일 ‘금융산업 내부통제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의 핵심은 개별 금융사가 이사회를 중심으로 내부통제 결함을 자체 점검하고,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직접 징계 후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당국은 제재를 통한 현장 개입을 줄이고 금융사에게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원칙 중심’의 감독 역할에 머물러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직접개입이 필요하다면 금융사가 예측가능하도록 구체적인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한 금융협회들은 금융당국이 내부통제가 우수한 금융사에게 과징금·과태료 경감, 검사 주기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금융사가 스스로 내부통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금융협회 “내부통제는 금융사 자율에 맡겨야” 

금융협회가 내부통제와 관련해 한목소리를 낸 배경에는 그동안 금융당국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개인을 징계의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한 불만이 놓여있다. 특히, 최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인해 금융당국으로 받은 중징계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하면서 금융협회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법원이 내부통제 문제로 금융사 CEO를 제재할 법률적 근거가 미비하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 

금융협회가 목소리를 내기 전에도 내부통제 문제를 당국 제재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지난 5월 발표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금융회사가 스스로 유인을 갖고 내부통제 강화에 노력을 기울이려면, 첫째 감독자 책임을 강화하고, 둘째 내부통제를 제재 경감에 대한 인센티브 수단으로 활용하며, 셋째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마련 의무‘는 법률이 아닌 자율규제로 유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지배구조법에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기준 위반을 이유로 CEO 등을 제재할 구체적인 법적 근거는 모호한 상태다. 반면 내부통제제도가 시작된 미국은 한국과 달리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법률적으로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행정규제를 위반한 금융사 임직원에 대해서는 위반행위나 감독소홀의 정도에 따라  최종감독자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미국은 내부통제기준 마련은 금융사에 맡기는 대신 내부통제가 우수한 금융사에 대해서는 제재 경감이라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율적인 개선을 유도한다. 특히, 금융사고가 발생한 뒤라도 내부통제 개선 노력을 인정받으면 제재금이 경감되기 때문에, 금융사로서는 내부통제제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실장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강화를 자율 규범으로 유도하기 위해 지배구조법에서 명시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는 선언적 의미로써 활용하거나 장기적으로 삭제하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행정규제 위반 시 감독자 책임을 강화하고, 내부통제 충실 마련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금융회사 스스로 유인을 갖고 내부통제기준 마련과 준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사회 독립성 확보되지 않는 한 자율규제는 시기상조?

반면, 금융사 이사회를 중심으로 내부통제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금융협회의 주장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당국의 간섭만 줄어들고 내부통제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금융사 이사회의 독립성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금융사 경영진이 이사회 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임직원에 대한 자체 징계를 효과적으로 부과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실제 금융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7~2019년 6대 은행 이사회 및  위원회 결의 안건(3273건) 중 97.2%(3180건)가 사소한 반대도 없이 원안 그대로 가결됐으며, 이 중 반대의견이 제기된 것은 겨우 4건(0.12%)에 불과했다. 이사회가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내부통제 문제를 금융사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게다가 손 회장의 DLF 1심 승소로 인해 사모펀드 사태 등에 대한 금융사의 책임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징계 취소를 결정하면서도, 금융사 경영진의 과도한 탐욕과 내부통제수단의 미비가 펀드사태의 원인이라고 매섭게 질타했다. 즉, DLF 1심 재판부는 현행법에 금융사 CEO 징계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징계를 취소하라고 한 것뿐, 금융사고의 책임이 금융사에 있다는 점은 명확히 했다는 것.

이 때문에 금융협회도 이사회의 내부통제 관련 활동을 지배구조 보고서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대안을 제시한 상태다. 사모펀드 사태로 벌어진 당국과 금융사 간의 줄다리기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