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업비트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업비트 홈페이지 갈무리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유예기간 종료를 석 달 앞두고 ‘잡코인’을 대거 정리하며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허술한 심사를 통해 부실 코인 거래를 지원해온 거래소들의 지각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지난 11일 ‘내부 기준 미달’을 이유로 마로·페이코인·옵져버·솔브케어·퀴즈톡 등 5개 코인을 원화마켓에서 제거한다고 발표했다. 업비트큰 또한 코모도 등 25개 코인을 유의 종목으로 지정하고, 발행사가 소명 기간 동안 유의 종목 지정 사유를 완벽히 소명하지 못하면 원화마켓 거래지원을 종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비트가 주말에 기습적인 코인 정리에 나선 것은 개정 특금법에 대응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개정 특금법에 따르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거래소는 향후 원화마켓을 운영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몸을 사리고 있는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에 소극적인 상태다. 특히, 상장된 코인의 수가 많을수록 위험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들은 은행과의 협력을 위해서라도 안정성이 떨어지는 코인을 대거 정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허술한 암호화폐 상장 심사에 대한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음에도, 거래소들이 특금법 유예기간(9월 24일) 종료 석 달을 앞둔 이제야 부실 코인 정리에 나섰다는 점이다. 

암호화폐의 경우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나 법적 규제가 없는 만큼 상장 여부는 전적으로 민간거래소에 의해 좌우된다. 한국거래소에 의한 엄격한 심사를 거치는 주식과 달리 난립한 민간거래소가 각자 상장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표준화된 상장 기준도 없고, 그나마 개별적으로 정한 기준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사업계획이 부실한 코인이 허술한 심사를 통과해 거래소에 상장됐다가 투자자들만 피해를 입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제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네스트’의 김익환 대표는 특정 암호화폐를 상장해주는 대가로 8억60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과 해당 암호화폐 1억4000만원 상당을 차명계좌로 받았다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 및 추징금 6700만원이 확정됐다. 

거래소가 발행에 관여한 암호화폐를 셀프 상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실제 업비트가 원화마켓에서 제거한 5개 코인 중 마로·페이코인은 모두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특금법 시행에 따라 거래소가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의 거래가 금지되는 만큼,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는 코인을 미리 솎아낸 셈이다. 

코인빗 또한 지난해 이오·프로토 등을 상장하고 대규모 에어드랍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 중 이오는 코인빗 운영사와 엠디에프 재단이 공동 발행한 코인이다. 프로토 또한 엑시아가 프로토 재단을 인수했다. 게다가 암호화폐의 백서에는 사업이 중단될 경우 발행사가 투자자에게 손실을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조항까지 포함돼 우려를 사고 있다. 

이처럼 거래소의 불투명한 상장 심사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거래소들이 부실 코인의 검증 책임을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결국 수백 개의 코인이 거래소에 난립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거래소들이 뒤늦게 부실 코인 정리에 나서면서, 개인투자자들이 덤터기를 쓰게 됐다는 점이다. 실제 업비트 공지 직전까지 12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던 페이코인은 주말 한 때 400원대까지 폭락했다가 14일 오후 1시 현재 하락분을 일부 회복한 880원에 거래되고 있다. 마로 또한 같은 기간 300원대에서 한 때 80원대까지 하락했다가 현재 118원에 거래되는 중이다. 

특금법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잡코인’을 기습 정리한 거래소들은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허술한 심사로 투자자 피해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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