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짧은 여정, 혼합재료, 30*80cm.
이은주, 짧은 여정, 혼합재료, 30*80cm.

 

산 그림자가 개울을 건너고
물결 찰랑이는 모래톱을 지나갑니다.

다시 산 그림자가
개망초를 넘어 달맞이꽃에 다다르면 
구름은 두 번 세 번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서녘으로부터 바람이
바람 소리와 함께 오고
꼬리부터 보이지 않는 송아지가
쇠방울을 쩔렁거리며 웁니다.

별들처럼 반짝이기 시작하는 풀벌레 소리
멀리 보이는 마을의 집들은 등을 켜고

여름날 저녁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개울가에 벗어둔 신발을 찾지 못합니다.

집 뒤에 있는 작은 구릉 같은 산길을 매일 운동 삼아 오릅니다. 습관으로 정해진 길을 따라 걷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인적이 뜸한 길을 택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 길도 내가 예전에 다니지 않은 길은 아닙니다. 자주 다니지 않을 뿐이지요.

그런데 자주 다니지 않는 길에 들어서면 이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아 매번 길을 잃고 여기저기 헤맨 후에야 간신히 제대로 된 길을 찾습니다. 

작은 산이지만 길은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 길은 잃고 다니다 보면 보지 못했던 꽃들과 나무, 깊이 파인 웅덩이와 바위도 만납니다. 밋밋했던 산길이 제법 재미를 줍니다. 이것이 '길 잃음'의 선물이겠지요.

영화 ‘런치박스 The Lunchbox’에 "가끔은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줍니다. Sometimes the wrong train takes you to the right station.”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어두워져 ‘개울가에 벗어둔 신발을 찾지 못합니다.’ ‘잘못 탄 기차’처럼 맨발로 냇가를 걸어봅니다. 구태여 ‘벗어둔 신발’을 찾지 않고 내일은 ‘새로운 신발’을 신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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