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존슨앤존슨 홈페이지
사진=존슨앤존슨 홈페이지 갈무리

“얀센 백신 예약하라던데 어떻게 생각해?”

31일 저녁, 오랜 친구들과의 단체채팅방에서 알람이 울려 들어가 보니 얀센 백신 예약을 두고 이야기가 한창이었습니다. 

기자는 코로나19 고위험군과는 거리가 있는 만 40세로 3분기가 돼야 백신 접종 순서가 돌아올 예정입니다. 얼른 백신을 접종하고 마스크와 작별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잔여백신을 검색해봤지만, 프로야구 입장권이나 몇 번 예매해봤을 뿐인 기자의 느린 손과 눈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얀센 백신 100만명분을 지원한다는 소식은 백신 접종 순서에서 비교적 후순위에 놓인 기자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입니다. 

막상 접종 기회가 주어지니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마찬가지로 희귀 혈전증 및 혈소판 감소 논란을 겪은 얀센 백신은 지난달 한때 미국에서 접종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기준 28명의 혈전증 사례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보고된 상태입니다.

“나이 많을수록 안전하다는데, 우리가 민방위 최고령이야.”

하지만 미국 내 얀센 백신 접종자가 900만명을 넘는 상황에서 부작용 사례가 30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백신의 위험성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CDC에 따르면, 얀센 백신을 접종한 ‘남성’ 100만명당 혈전증 환자는 채 3명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얀센 백신 접종 대상자 중 가장 고령이라 부작용 위험이 적다는 친구의 말도 마음속 불안을 씻어내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자정이 다가오자 기자는 우선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에 접속해 예약정보 입력 화면에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두고 초조하게 예약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얀센 백신을 접종하고 싶다는 글이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경쟁이 치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예약하셨습니다.”

31일 오후 11시 57분, 혹시나 해서 눌러본 본인인증 버튼이 웬일로 ‘대상자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 대신 휴대폰 인증 창을 띄워줍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접종일자와 가까운 의원을 고른 뒤 완료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던 결과 조회 화면은커녕 서버가 불안정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접속 대기자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이미 제 앞에는 7천명, 뒤에는 2만명이 넘는 ‘아재’들이 차례로 줄을 서 있습니다. 예약이 된 건지 안 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0여분을 기다려 다시 시스템에 접속해보니 “이미 예약이 완료된 대상자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조금 더 기다리자 질병관리청에서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이 예약됐다는 카카오톡 메시지까지 보내줍니다. 

저와 함께 예약을 시도했던 친구들도 조금씩 곤란을 겪었지만 결국 모두 성공했습니다. 공인인증서나 PC 운영체제 문제로 타이밍을 놓친 몇몇은 수만명의 대기자들이 예약을 마치기를 기다려야 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예약 시스템이 정상화되면서 모두 새벽 1시가 넘기 전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영등포구 주민인 친구 한 녀석은 민방위 명단 전산 오류로 속을 끓였지만 오늘 아침 결국 예약에 성공했습니다. 

 

사진=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홈페이지 갈무리

“화이자 ‘존버’? 그냥 빨리 맞는 게 낫죠.”

서버 장애 등의 소동을 겪으며 백신 접종 예약을 마친 뒤 가장 놀랐던 점은 정부의 백신 수급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화이자·모더나 등 mRNA 방식이 아닌 백신에 대해 회의적이던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조차 얀센 백신 접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유는 각양각색입니다. 누군가는 문재인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얀센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합니다. 나중을 기다리다가 화이자·모더나는 커녕 중국산 백신을 맞게 될 수도 있다며, 그나마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백신이 낫다는 겁니다. 다른 누군가는 문재인 정부를 믿기 때문에 얀센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얀센 백신 지원을 약속받은 것은 문재인 정부 외교의 승리라는 겁니다.

얀센 백신 접종 예약을 두고 ‘아재’들이 보인 열기는 정부에 대한 태도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몇몇 ‘아재’들은 예약에 성공하자 미뤄뒀던 여행 계획을 다시 꺼내며 벌써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가장 빨리 맞을 수 있는 백신이 가장 좋은 백신.”

물론 화이자·모더나를 접종하겠다며 ‘존버’하는 것 또한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무엇이 더 좋은 백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신마다 장단점이 다르고 임상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얀센 백신은 임상 결과 다른 백신보다 예방효과가 낮다는 결과가 나와 선호도가 높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얀센 백신은 화이자·모더나와 달리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급격하게 진행되기 시작한 9월 이후 임상이 시작됐고, 주로 코로나19 변종이 출현한 남아프리카와 브라질 등에서 임상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반박도 있습니다. 

백신의 우열을 나누는 것이 사회적 차원에서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미국 메릴랜드대 인간바이러스학연구소(IHV)의 로버트 갈로 소장은 지난달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특정 백신 선호 현상은 우리가 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애물”이라며, 사람들이 특정 제약사의 백신을 맞기 위해 접종을 지연할수록 집단면역 달성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현재 공급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은 모두 적은 부작용과 높은 감염 및 중증 예방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무엇이 더 좋은 백신인지 비교하기보다는 우선 접종 가능한 백신을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철우 국제백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 1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백신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르고 싶냐는 질문에 “제가 맞을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기자도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한여름이 되면 사람이 드문 거리에서만큼은 땀이 가득 찬 마스크를 벗고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접종을 마치게 되면 접종 과정과 부작용 등에 대한 경험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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