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기한 만료 직전 합의에 도달하면서 2년간 이어진 배터리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특히 이번 분쟁이 미국 내 투자 및 일자리 창출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미국 언론들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1일 공동입장문을 내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 중인 배터리 영업비밀 관련 분쟁을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SK가 LG에 현금 1조원과 로열티 1조원 등 총 2조원의 합의금을 지급하는 대신, 모든 국내외 관련 소송을 취하하고 10년간 쟁송하지 않는 조건이다. 이로써 양사는 713일간 이어온 긴 갈등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 LG-SK 합의, 최종 승자는 바이든?

비록 한국 기업 간의 다툼이었지만, 이번 합의에는 바이든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양사가 합의에 도달하는데 실패했다면, SK이노베이션이 추진 중인 조지아주 투자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데다, 글로벌 전기차 공급망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언론들은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승자는 합의금을 받은 LG도, 불확실성에서 벗어난 SK도 아닌 바이든 정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조지아주 내 배터리 생산 관련 일자리 6천개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에 공화당 주지사뿐만 아니라 민주당 상원의원들로부터도 (LG-SK 분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어 “바이든의 결정에는 ▲전기차 보급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의지와 ▲오랫동안 미국이 강력하게 지지해온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두 가지 중요한 정책적 문제가 걸려 있었다”며 “이번 합의로 한국과 미국 정부의 골칫거리가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LG의 손을 들어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지적재산권 도용으로 중국을 비난해온 그동안의 행보에 모순된다. 하지만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조지아주 고용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게다가 라파엘 워녹 조지아주 상원의원(민주당)은 내년 재선을 앞두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거부권을 행사하든 안하든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LG-SK가 극적 합의에 성공하면서 위기를 벗어나게 된 셈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양사 합의가 성사되자 성명을 내고 “이번 합의는 미국 노동자들과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고 자축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일 성명을 내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합의는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산업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일 성명을 내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합의는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산업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 SK 합의금 2조원 "싸게 막았다" 긍정 평가

한편 증권가에서는 이번 합의를 두고 양사 모두에게 긍정적인 신호라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특히 합의금을 통해 추가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 LG뿐만 아니라, 2조원을 부담해야 하는 SK로서도 오히려 “싸게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합의금은 그동안 SK가 제시했던 금액의 두 배 수준이다. 하지만 합의가 불발됐을 경우 포기해야 하는 매몰 비용과 비교하면 오히려 적다. 조지아주에 추진 중인 배터리 생산 공장 설비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비용뿐만 아니라 공급계약을 맺은 폭스바겐·포드에 지급해야 하는 위약금과 LG에 물어야할 배상금, 다른 전기차 업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 미국 시장 포기에 따른 추가 손실 등 유·무형의 비용이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번 합의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시장 예상치(3~9조원) 대비 낮은 금액으로 합의했다”며 “배터리 사업 성장과 미국 조지아주 공장 건설이 계속 진행되며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추가적인 미국 공장 증설 가능성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였으며 단기적으로는 신용등급과 재무, 사업적 리스크가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 연구원은 이어 “특허소송 종료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IPO의 큰 걸림돌이 사라졌고, 구주 매출을 통해 약1조원을 확보함으로써 합의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로열티는 단기적인 자금 압박 요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합의금 확정으로 S&P와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등급 하락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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