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의료벤처 나녹스가 개발 중인 디지털 X선 촬영기기 '나노아크'. 사진=나녹스 홈페이지 갈무리
이스라엘 의료벤처 나녹스가 개발 중인 디지털 X선 촬영기기 '나녹스 아크'. 사진=나녹스 홈페이지 갈무리

공매도 투자업체의 보고서 한 장이 SK텔레콤의 경영전략을 뒤흔들고 있다. 부진했던 SK텔레콤의 해외투자 역사에 첫 성공이라 할 만한 나녹스가 사기 의혹에 시달리면서, 향후 투자전략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스라엘 디지털 의료기기 벤처기업 나녹X이미징(나녹스) 주가는 공매도 투자업체 시트론 리서치와 머디워터스의 저격을 맞고 급락하는 중이다. 지난 15일과 22일(현지시간) 연달아 공개된 두 업체의 보고서는 나녹스가 실질적인 디지털 X선 촬영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기술시연 영상까지 조작했다는 의혹을 담고 있다. 

덕분에 지난 11일 64.19달러까지 폭등했던 나녹스 주가는 25일 종가 기준 28.48달러까지 하락했다. 의혹이 해명되지 않을 경우 상장 첫날인 지난달 21일 종가인 21.70달러와 더욱 가까워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 SKT 해외투자 흑역사, 베트남·미국·중국 연이은 실패

SK텔레콤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총 2300만 달러(약 273억원)를 투자해 261만주를 확보한 나녹스의 2대 주주다. 공매도 세력의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녹스는 SK텔레콤의 부진했던 해외투자 흑역사를 끝낼 기회로 기대를 모았다. 

실제 SK텔레콤은 2000년대 들어서 내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격적인 해외투자를 감행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SK텔레콤은 베트남 호치민 지방정부와의 합작으로 시작한 이동통신 서비스 ‘S폰’ 사업에 약 1억5000만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결국 투자금 대부분을 회수하지 못한 채 2010년 철수를 결정했다. 2006년에도 미국에 자회사 ‘힐리오’를 설립하고 MVNO(이동통신재판매)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5억6천만 달러의 손실을 내고 2년 만에 버진모바일에 회사를 매각한 뒤 철수했다. 

2007년 중국 차이나유니콤, 2010년 미국 라이트스퀘어드 등 현지 이통사 투자도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SK텔레콤이 10억 달러를 투자해 확보한 차이나유니콤 지분 6.6%는 투자 3년 만인 2009년 전량을 매각했고, 6000만 달러를 투자한 라이트스퀘어드는 2012년 파산신청을 했다.

◇ 박정호 체재, 달라진 해외투자 전략, 키워드는 '비통신'

SK텔레콤의 해외 투자전략이 달라진 것은 2017년 박정호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기존 투자 대상이 ‘통신’에 국한됐다면, 이제는 통신을 넘어 ICT산업 전반에 걸쳐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실제 연이은 실패로 위축됐던 SK텔레콤의 해외 투자는 박 사장 취임 이후 급격하게 활성화됐다. 적자 해외법인은 과감하게 교통정리에 나서는 한편, 지분 투자를 통해 컨텐츠, 모빌리티, 헬스케어,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신기술 개발에 나서는 모양새다. 지난해에는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공유 업체 ‘그랩’과 조인트벤처 ‘그랩 지오 홀딩스’를 설립했고, 2018년에는 700억원을 들여 세계 1위 양자암호통신 기업인 스위스의 IDQ 1대 주주로 올라섰다. 미국에 투자계열사 SK텔레콤 TMT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사내 유망 기술 사업화를 위한 현지 거점 마련에도 나섰다.

공격적으로 국내외 투자를 감행한 결과 비통신 분야 매출 비중도 40% 가까이 상승했다. 한계가 있는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벗어나겠다는 박 사장의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미국 공매도 투자업체 시트론리서치와 머디워터스가 공개한 나녹스의 고객사 '골든바인 인터내셔널 컴퍼니'(왼쪽)와 '골드러시'(오른쪽)의 본사 사진. 자료=시트론리서치, 머디워터스
미국 공매도 투자업체 시트론리서치와 머디워터스가 공개한 나녹스의 고객사 '골든바인 인터내셔널 컴퍼니'(왼쪽)와 '골드러시'(오른쪽)의 본사 사진.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자료=시트론리서치, 머디워터스

◇ 나녹스, 단순투자 아닌 사업방향성의 문제

문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투자 성과보다는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점이다. 실제 SK텔레콤은 지난 2017년 미국 셰일가스 수송·가공(G&P) 업체 ‘유레카 미드스트림 홀딩스’에 대한 투자(1억 달러)를 시작으로 북미 가스산업에 약 8000억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유가가 폭락하면서 향후 사업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지난해에는 1억 달러를 들여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Vingroup)’ 지주사 지분 6.1%를 확보하며 베트남 재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빈그룹의 과도한 자동차산업 투자로 실적 악화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등 악재가 겹치고 있다.

나녹스가 투자 규모에 비해 유독 이슈가 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SK텔레콤이 나녹스에 투자한 273억원은 지난해 영업이익(1조1100억원)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오랜 해외투자 흑역사를 딛고 ICT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공격적인 비통신 분야 투자를 감행하는 상황에서 나녹스의 성공이 SK텔레콤에게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과거의 실패를 지우고 박 사장의 경영방침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녹스의 추락은 같은 의미에서 SK텔레콤에 치명적이다. 전략적인 해외투자의 첫 성과가 ‘사기 의혹’으로 판명될 경우 지금까지 추진해온 경영전략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나녹스로 인해 SK텔레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한다. 이해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나녹스에 대한 투자 원금(273억원) 대비 나녹스 지분 보유 가치(약 818억원)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나녹스의 디지털 X 레이 기술을 활용해, SK텔레콤 자회사인 ADT캡스의 차세대 보안 솔루션에 활용할 계획은 변함없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나녹스로 인해 SK텔레콤의 해외 투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과도한 우려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제 IDQ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8.1% 증가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SK텔레콤과 IDQ가 공동개발한 양자난수생성(QRNG) 칩셋을 처음 수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지분을 인수한 디지털 광고업체 ‘인크로스’도 코로나19 이후 ‘언택트’가 강조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 또한 당시 인수가격(주당 1만9200원) 대비 2배 이상 오른 4만3850원을 기록 중이다.

나녹스라는 암초를 만났지만, 내수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SK텔레콤의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텔레콤이 다양한 분야에 뿌려놓은 씨앗이 언제 발아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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