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잠화.
옥잠화.

 

초록색의 윤택한 잎과 고결하고 청아한 하얀 꽃이 달빛에 흐늘거린다. 산들바람과 함께 춤추는 맑고 달콤한 향기가 밤하늘에 가득하다. 보름달을 따라서 피어난 꽃은 선녀가 되어 보름달을 밤새 지켜주고 있다.

“이 향(香)을 어떻게 간직 할 수 있나요?” 물음에 아무런 답이 없다. 그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향기를 전해 준다. “향기는 기억으로 간직 된다”라는 말처럼 향기는 기억으로 가슴에 남는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향기이니 더 설명이 필요 하겠는가. 옛날 피리를 잘 부는 남자가 보름날 아래서 고고히 피리를 불고 있었다. 아름다운 피리소리에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피리 연주를 계속 청하였고, 새벽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남자가 정표를 달라고 하였다. 선녀는 머리에서 비녀를 빼어 주었는데 받는 순간 땅에 떨어져 깨어졌다. 그 자리에서 선녀의 옥비녀를 닮은 꽃이 피었다고 한다.

선녀의 옥비녀의 하얀 꽃은 밤에 피어나고 향기가 청아하다. 맑으면서 은은하고 달콤하다. 그래서 구슬 옥(玉), 비녀 잠(簪)을 써서 ‘옥잠화(玉簪花)’라고 한다. ‘백학선(白鶴仙)’이라고도 한다.

옥잠화.
옥잠화.

 

백합과인 옥잠화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옥잠화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신숙주의 시 한수가 있어 조선 초에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야릇한 향기가 풀 장막을 뚫으니 (天 香 花 苒 透 羅 惟)/ 얼음 혼 눈 넋에 흰 이슬 적셨나(雪 魄 氷 魄 白 露 濕)/ 옥잠의 참 멋을 아시고자 하오면(欲 識 玉 簪 眞 面 目)/ 피기 전에 봉오리를 보시옵소서(請 君 看 取 未 開 時) 

학명은 Hosta plantaginea (Lam.) Aschers.이다. 속명인 호스타(Hosta)는 Nicolous Thomas Hosta와 Joseph Hosta를 기념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종소명인 플란타지네아(plantaginea)는 질경이속(plantago)이라는 뜻으로 윤기 나는 잎이 질경이 잎과 닮은 연유이다.

옥잠화
옥잠화

 

옥잠화는 현대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꽃이다. 반음지식물이고, 밤에 피니 퇴근 후 일품향기를 밤새 맡을 수 있다. 초록빛의 윤기 나는 잎은 관상가치가 높다. 석양이 되면 비녀 모양의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가운데서 암술이 나오면서 하얀 꽃이 피어난다. 크기는 10~13cm정도이다. 빠른 것은 오후6시경에 피고, 7~8시경에는 활짝 피어 맑고 달콤한 향기를 발산 한다. 향기는 보름달과 마주보며 더욱 빛나고, 바람과 만나서 춤추면서 고혹적이 된다. 다음날 9시경부터 꽃이 시든다. 밤의 여왕 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벌 나비가 거의 오지를 않는다. 왔다가 금방 가버린다. 꿀벌 통을 옆에 두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향기는 아카시아보다 달콤한데 이리도 박대 하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해답은 나팔처럼 길게 뻗어 꿀벌이 올 수 없는 구조이고, 암술이 수술위에 있다. 이것은 다른 꽃에서 꽃가루를 받겠다는 구조로 벌 나비가 도와 줄 수 없다. 향기는 일품이지만 가장 중요한 꿀이 없으니 꿀벌과 나비가 오지 않는 것이다.

옥잠화 꽃봉우리.
옥잠화 꽃봉우리.

 

또한 밤에 피어나니 벌 나비가 오기도 힘들다. 꽃송이도 많지만 수정이 어려우니 종자 결실은 아주 적은 편이다. 그래도 자손 번식의 방법이 있다. 초가을 아침저녁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도와주는 것이다.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어 수정을 하는데 이것을 ‘풍매(風媒)’라고 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서식하는 꽃에서 종자결실이 잘되는 편이다. 9월 중순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잘 불고 서늘하면 결실 율이 높아진다.  

꽃말은 ‘추억’ ‘조용한 사랑’이다. 초가을에 추억을 안고서 피어나고 바람결에 조용한 사랑을 나누나 보다. 맑고 달콤한 향기에 초록색의 반짝이는 잎도 멋지고 무엇보다 석양에 필 꽃봉오리가 매력적이다. 조용한 사랑은 추억으로 남고 기억된다. 
꽃이 피기 전 터질듯 한 고혹적인 모습과 백옥처럼 깨끗한 꽃송이, 맑고 달콤한 향기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한다. 가을이 기다려지는 것은 옥잠화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30여년간 야생화 생태와 예술산업화를 연구 개발한 야생화 전문가이다. 야생화 향수 개발로 신지식인, 야생화분야 행정의 달인 칭호를 정부로부터 받았다. 구례군 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퇴직 후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야생화에 대한 기술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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