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차세대 서버용 CPU '파워10'을 삼성전자에 위탁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사진=IBM
IBM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차세대 서버용 CPU '파워10'을 삼성전자에 위탁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사진=IBM

삼성전자가 IBM의 물량을 수주하며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7나노미터 CPU를 준비 중인 인텔의 선택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라 섣부른 전망은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IBM은 지난 17일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파워10’을 공개하며, 이를 삼성전자의 극자외선(EUV) 기반 7나노미터 공정에서 생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IBM과 차세대 7나노미터 CPU 위탁 생산 계약을 맺은 것은,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을 추격 중인 삼성전자에게는 희소식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IBM 이전에도 퀄컴에서 5나노미터 공정의 모바일 CPU를, 엔비디아에서는 7나노미터 공정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수주하는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비중을 확대해왔다. 이번 IBM과의 계약은 7나노미터 이하 미세공정에서 TSMC 대비 기술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제는 업계의 기대와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 우선 서버용 CPU 시장에서 IBM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서버 시장에서 IBM의 점유율은 지난 1분기 기준 4.8%. 완제품이 아닌 CPU로 한정하면 인텔이 시장의 약 95%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AMD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이 나눠 갖는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TSMC의 점유율은 각각 18.8%와 51.5%로 30% 이상 차이가 난다. IBM과의 계약이 좋은 소식은 맞지만 현재의 격차를 줄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결국 삼성이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인텔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인텔은 현재 7나노미터 공정 CPU 개발이 지연되면서 AMD와의 경쟁에서 애를 먹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한때 8대2 수준으로 벌어졌던 두 기업의 격차는 지난 2분기 기준 64.9% 대 35.1%로 좁혀진 상태다. 특히 팹리스인 AMD의 경우 설계만 직접 하고 생산은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맡기는 식으로 빠르게 7나노 CPU를 시장에 내놓은 반면, 설계와 생산을 모두 직접 하는 인텔은 아직 10나노 CPU조차 공개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인텔은 지난 7월, 7나노 CPU 생산을 외부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만약 삼성전자가 CPU 시장에서 가장 큰 손인 인텔의 물량을 따낼 수 있다면, TSMC와의 격차도 쉽게 메울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인텔과 CPU 위탁생산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긍정적인 점은 ▲인텔이 파운드리와의 협력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 ▲TSMC 외에는 7나노미터 공정을 보유한 파운드리 업체가 삼성전자 뿐이라는 것 ▲TSMC가 7나노미터 공정에서 주문이 밀려 막대한 인텔의 물량을 전부 소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인텔뿐만 아니라 다수의 팹리스 기업이 TSMC의 파운드리 시장 독점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인텔 입장에서는 TSMC에 물량을 몰아줘 지나치게 목소리를 키우기보다는, 삼성전자와 물량을 나눠 파운드리 시장의 독점화를 방지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게다가 TSMC에 물량을 몰아주고 싶어도 이미 애플과 AMD 등의 주문이 밀려있어, 늦어진 7나노 CPU 개발이 더 지연될 위험도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에 모두 생산기지를 둔 삼성전자와 달리 미국 시장에 ‘올인’하고 있는 TSMC가 정치적인 측면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TSMC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고 미국 애리조나주에 약 120억 달러를 들여 5나노미터 공정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나서는 등 뚜렷한 ‘친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의 경우 아직 화웨이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미국과 중국에 모두 반도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TSMC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불편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꼬여있는 미중 갈등의 실타래 속에서 TSMC 추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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