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파이낸셜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네이버파이낸셜 홈페이지 갈무리

네이버가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을 통해 적극적인 금융시장 진출 행보를 보이면서, 은행·보험·카드 등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네이버와 같은 테크핀 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통해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지지 의견도 적지 않다. 

금융 전반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혁신을 일으키는 ‘핀테크(fintech, 금융 ‘finance’와 기술 ‘technology’의 합성어)’가 전통적인 금융사를 중심으로 추진돼왔다면, 네이버·카카오 등 ICT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테크핀(techfin)’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사가 중심이 된 한국의 ‘핀테크 혁명’은 전통적인 금융 패러다임에 기반해 발전된 기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모바일 서비스 확장, 비대면 창구 증가와 같은 제한적인 수준의 변화에 그친 상태다. 반면 최근 진행되고 있는 ‘테크핀 혁명’은 ICT기업이 중심이 된 만큼 간편결제·송금 서비스, 인터넷전문은행 등 기술 중심의 금융산업 변화를 빠르게 불러오고 있다. 

◇ 네이버파이낸셜 출범 10개월만에 순항 중

지난해 11월 네이버는 전략적투자자(SI)인 미래에셋으로부터 8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아 기존 간편결제·송금서비스를 담당하던 네이버페이를 분사해 ‘네이버파이낸셜’을 설립했다.

설립 후 10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네이버파이낸셜이 금융시장에 일으킨 파문은 크다. 당장 지난 6월 8일 미래에셋과 네이버파이낸셜이 협업해 출시한 환매조건부채권(RP)형 종합자산관리(CMA) 계좌 ‘네이버통장’은 한 달 만에 27만명의 가입자를 모으며 순항하고 있다. 

이 밖에도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달 ‘엔에프(NF)보험서비스’ 법인을 등록하고 오는 9월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또한, 네이버페이에 후불결제 서비스를 도입해 카드사가 장악한 여신시장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후불결제는 신용카드업 면허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금융위원회에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하면 해당 규제를 최대 4년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 

또한, 네이버파이낸셜은 이미 지난달 금융위로부터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됐다. 지정대리인 제도는 핀테크 기업이 금융사로부터 대출·카드발급심사·보험계약 변경 등 핵심업무를 최대 2년까지 위탁받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시범운영하는 제도다.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된 네이버파이낸셜은 향후 미래에셋과 협업해 개인·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신용평가 및 대출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자료=IBK경제연구소
자료=IBK경제연구소

◇ 쇼핑·간편결제 기반으로 금융시장 진출

네이버의 금융시장 진출 기반은 간편결제서비스 ‘네이버페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소비행태가 확산되면서 네이버페이는 1분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해 5조원을 돌파했다. 결제자 수 또한 같은 기간 23% 증가한 1250만명을 기록했다. 간편결제 서비스를 통해 구축한 광범위한 이용자층과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향후 개별 금융소비자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통해 기존 금융사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이는 전자상거래 서비스에서 간편결제 서비스를 거쳐 금융시장 전반에 진출한 중국 알리바바의 사업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알리바바는 지난 2003년 출시한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의 성장에 힘입어, 2014년 ‘앤트파이낸셜’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금융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알리페이는 중국 간편결제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플랫폼으로, 국내에서는 네이버페이와 유사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알리바바의 금융시장 진출은 대출, 보험, 자산운용 등 전 분야에 걸쳐 있다. 2007년 자사 전자상거래 플랫폼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자체 신용평가를 통해 소액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리파이낸스’를 시작으로, 2013년 텐홍자산운용(天弘基金)과 제휴해 알리페이 계정 내 여유자금을 운용해주는 ‘위어바오’를 출시했고 같은 해 텐센트, 평안보험과 합작투자를 통해 중국 최초의 인터넷 전용 손해보험사 ‘중안보험’을 설립했다. 2015년에는 ‘즈마신용(芝麻信用)’을 설립해 전자상거래 거래내역과 알리페이 잔고를 분석해 개인 신용등급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네이버쇼핑과 네이버페이에서 출발해 여신, 보험, 대출 등 금융 전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네이버파이낸셜의 전략이 알리바바의 금융시장 진출 전략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공고한 플랫폼을 구축한 IT 기업은 자신들의 플랫폼을 활용해 대부분 금융사업에 진출하고 있다”며 네이버가 알리바바를 롤모델로 금융업으로 사업 확장을 꾀할 것이라 내다봤다. 

◇ 네이버, 금융시장 '메기' 될까?

네이버의 발빠른 금융시장 진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당장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의 경우, 손보사에게 14%의 상한선이 정해진 수수료 대신 상한선 규제가 없는 광고비를 받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신용카드와 마찬가지인 네이버페이의 후불결제서비스 또한 카드사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다. 혁신금융서비스제도를 통해 신용카드업 면허 없이 비슷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데다, 카드사에게 적용되는 수수료율 규제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

기존 규제에 얽매인 금융사와 달리 금융시장에 진출하는 ICT기업에 대한 혜택이 지나쳐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지만, ‘테크핀 혁명’을 통해 금융업 전반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부분 금융시장에서 테크핀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입장이다. 

금융보안원은 ‘2020 디지털금융 이슈 전망’ 보고서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같은 젊은 세대일수록 전통적인 금융회사만 고집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있어 금융 주도권 확보를 위한 빅테크 기업과 기존 금융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본시장연구원 또한 지난해 발표한 ‘빅테크의 금융산업 진출현황과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금융산업에서 빅테크는 후발주자이지만 고객기반과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여 틈새시장에서 우위를 확보, 진출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있어 사업영역면에서 은행과의 경쟁관계가 불가피하다”며 “빅테크는 대규모 고객층과 브랜드 인지도를 통해 높은 신뢰를 받고 있으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독자적인 고객데이터를 사용하여 개별 고객의 취향에 맞게 제품을 조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ICT기업이 주도하는 테크핀 혁명은 첨단기술을 활용한 금융혁신이라는 순기능과 시스템 전반의 위험이 증대될 수 있다는 역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일으킨 테크핀 바람이 정체된 금융 생태계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메기’ 역할을 할지, 과도한 확장과 규제 우회로 새로운 위험을 촉발하는데 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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