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신입공채 직무적성검사(GSAT)가 시행된 지난해 10월 20일 오전 취업 준비생들이 서울 강남구 단국대학교 사범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 마련된 시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그룹 신입공채 직무적성검사(GSAT)가 시행된 지난해 10월 20일 오전 취업 준비생들이 서울 강남구 단국대학교 사범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 마련된 시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채용트렌드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다수의 기업이 비슷한 시기에 서류 지원을 받은 뒤 여러 차례의 면접을 거쳐 신입사원을 대규모로 채용하던 기존 공채제도에서, 점차 필요할 때마다 직무적합성을 따져 소수의 인원을 상시 충원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공채 중심의 채용시스템에 맞춰 취업을 준비해온 취준생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일 LG그룹은 올해부터 신입사원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하반기부터 연중 상시 채용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LG그룹은 기존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해온 정기 공채 대신 각 계열사 현업 부서가 필요시 채용공고를 내는 상시 채용 방식으로 전환하고, 신입사원의 70% 이상을 채용 연계형 인턴십을 통해 선발할 계획이다.

LG뿐만이 아니다. 당장 10대 그룹 중 올해 상반기 신입 공채를 실시하는 곳은 삼성·SK·롯데·포스코·CJ 등 5곳뿐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KT는 올해 공채 폐지를 선언했다. SK는 앞으로 2~3년간 점진적으로 공채 비중을 줄일 예정이며, 삼성 또한 지난 2017년 그룹 공채에서 계열사별 공채로 채용제도를 수정했다.

◇ 사라지는 정기 공채, 이유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유지돼온 정기 공채가 사라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기존 채용제도를 통해서는 더 이상 직무 적합성이 높은 신규 인력을 충원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채용문화가 공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전부터다. 1957년 삼성물산이 처음 공채를 시작해 27명 모집에 1200명의 지원자가 몰린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기업들이 인력 확보를 위해 삼성과 같은 정기 공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는 산업고도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경제성장기에는 필요에 따라 수시로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보다, 향후 인력 수요를 예측해 고학력 신입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역량을 갖춘 인력을 다수 채용한 뒤 직무 전문성은 업무 과정에서 육성하는 방식의 정기 공채는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대표적인 채용문화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대규모의 지원자를 표준화된 역량 평가를 통해 걸러낸다는 점에서 채용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문제는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인력 수요가 감소하고, 산업구조가 고도화에 따라 보편적 역량보다는 전문성이 중요해지면서 공채가 더 이상 효율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못한 채용제도가 됐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013년 발간한 ‘한‧미‧일‧독 기업의 채용시스템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 채용문화 특징으로 직무가 아닌 사람 중심의 인사관리를 꼽았다. 상공회의소는 “맡겨질 업무가 수시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 관련 요구역량, 기대역량에 대해서 사전에 규정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며 “직무능력보다는 잠재적인 능력이 강조되고 이를 파악하기 위해 학력 등 다양한 평가 기준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상공회의소는 이어 “저임금 인력의 투입만으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품질경쟁이 보다 중요해진 오늘날에는 성실성이 아닌 직무별 전문성을 갖춘 인재의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며 “대규모 공채 시스템에서는 대규모 인원에 대한 채용이 진행되다 보니 개별구직자들의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일률선발·일괄배치를 전제하는 공채는 필연적으로 직무적합성의 미스매치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지원자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1년 내 조기퇴사하는 대기업 신입사원의 49.1%가 '조직 및 직무 적응 실패'를 퇴사 이유로 꼽았다. 설령 1년 이상 근속하는 경우라도 채용 후 직무 적응을 위한 교육훈련이 필요해, 공채를 통해 아낀 채용비용이 고스란히 육성비용으로 쓰이게 된다.

학벌주의와 과도한 스펙 경쟁이 심화되는 것 또한 정기 공채의 부작용으로 꼽힌다. 전문성이 아닌 보편적 역량을 검증하려다 보니 기업들도 직무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어학능력이나 자격증, 또는 학벌과 같은 전통적인 기준에 계속 의존하게 된다는 것.

‘공채형 인간’의 저자 사과집(필명)은 지난해 온라인 매체 'ㅍㅍㅅㅅ'에 기고한 글에서 “공개 채용 방식 하에서는 모두가 손해를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는 미래 시장에 대응하면서도 현업 부서가 필요로 하는 핵심 인재를 제대로 선발하지 못한다. 적성과 관계없이 배치된 신입사원들의 퇴사율은 점점 높아진다”며 “사회 구조적으로는 소수의 합격자와 다수의 불합격자가 생기는 공채 제도에 수많은 젊은이가 매달려 정작 다양한 일자리에 적절한 인재가 매칭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 공채 없는 노동시장, 어떻게 준비할까?

사과집 작가의 말대로 “모두가 손해를 보는” 정기 공채가 사라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채에 맞춰 취업을 준비해온 취준생들에게는 공채 폐지는 달갑지 않은 소식인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 수시 채용으로 전환될 경우 그에 적합한 ‘스펙’을 다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 정기 공채는 일자리 창출을 이끄는 잠재적 요인 중 하나였다. 수시 채용으로 전환될 경우 대기업의 인력 수요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 취준생들로서는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시 채용 전환 시 채용절차의 공정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정기 공채가 채용문화의 공정성 확보 및 일자리 창출의 해법은 아니라는 점에서, 기업에게 정기 공채 유지를 계속 요구하기는 어렵다. 실제 정기 공채를 통해 신규 인력을 충원하는 대표적인 분야인 은행권의 경우, 우리·하나·신한은행의 채용비리 사태로 인해 여론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비교적 투명하다는 공공기관 정기 공채 또한 지난해 정부 조사 결과 182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되면서 신뢰를 상실했다. 

또한, 최근 대기업의 공채 폐지 흐름은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위축과 경기 둔화의 영향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공채를 유지한다고 해도 고용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채용문화의 변환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방관할 것만은 아니다. 종신고용과 호봉제라는 한국의 고용문화와 끈끈하게 얽혀있는 공채의 폐지는 필연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또한 정기 공채과 달리 수시 채용의 경우 채용 절차가 상대적으로 불투명할 위험이 크다. 채용 절차의 투명성, 자유로운 이직이 가능한 노동시장과 투명한 채용절차 뿐만 아니라, 구직·이직 과정에 있는 취준생들을 지원해줄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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