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곤'을 실은 로켓 '팰컨9'가 미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사진=스페이스X 트위터 갈무리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곤'을 실은 로켓 '팰컨9'가 미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사진=스페이스X 트위터 갈무리

엘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회사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곤’의 성공적인 발사를 지켜보는 러시아의 심경은 미묘하다. 경쟁국의 새로운 시도와 성공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미·러 양국의 오랜 우주 개발 경쟁에 ‘민영화’라는 변수가 추가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러시아, 스페이스X 성공에 미묘한 입장

러시아의 우주 과학 사업을 총괄하는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의 드미트리 로고진 사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발사와 도킹에 성공한 지금은 짐 브리덴스타인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도 될 것 같다. 브라보!”라며 “엘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 팀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한다. 나는 머스크의 농담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스코스모스 관계자들의 반응이 축하 일변도인 것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우스티멘코 로스코스모스 대변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크루 드래곤 발사 성공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축하 발언을 인용하며 “크루 드래곤의 성공적인 발사 뒤 나타난 히스테리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크루 드래곤의 성공은)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다. 이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향해 비행하는 것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도 함께다. 멋진 일이다”라는 미묘한 축하의 말을 덧붙였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외신들은 이번 크루 드래곤의 성공에 대해 우주개발사업의 무게중심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겨가는 전환점이라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 이들은 NASA가 우주개발사업 중 유인우주선 및 근거리 탐사 등 일부 분야를 민간에 개방하면서, 민간기업의 경쟁과 효율화를 통한 우주개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크루 드래곤의 성공이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로스코스모스 대변인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축하인지 비꼬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발언은 스페이스X의 성공을 지켜보는 러시아의 심경이 어떤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드미트리 로고진 러사이 연방우주공사 사장이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을 축하하자 짐 브리덴스타인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과 엘론 머스크 스페이스X 설립자가 감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드미트리 로고진 트위터 갈무리
드미트리 로고진 러사이 연방우주공사 사장이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을 축하하자 짐 브리덴스타인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과 엘론 머스크 스페이스X 설립자가 감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드미트리 로고진 트위터 갈무리

◇ 우주산업의 민영화, 미 러 2차전 돌입

미 언론의 열광과 달리 미국 정부가 우주산업을 민영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초당적으로’ 진행돼왔다. 미·러 양국 간의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이 벌어지던 1962년에 이미 AT&T가 통신위성 텔스타1호를 쏘아올렸고, 1984년 상업적우주발사법을 시작으로 1996년 우주상업화촉진법, 1998년 상업적우주법 등 일련의 법안 제정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경향은 2004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우주왕복선 퇴역을 대비해 시작한 유인 우주 탐사 계획 ‘컨스털레이션 프로젝트’가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취소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지원금 제공을 약속하며 소형 유인우주선 개발에 대한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했고, 달 탐사가 종착지였던 컨스털레이션 프로젝트 대신 유인 화성 탐사 계획을 새로 발표했다. 

이러한 흐름 뒤에는 유인우주선처럼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과는 불분명한 산업을 민간으로 넘기고 원거리 탐사 등 최신 기술 개발에 예산을 집중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놓여 있다. 실제 미 연방정부 예산 대비 NASA 예산 비중은 지난 1966년 4.41%에서 올해 0.48%로 급감했다. 쪼그라든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무인우주선으로도 충분한 달 탐사에 970억 달러의 예산을 쏟아붇는 컨스털레이션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미 정부의 우주개발산업 모토는 오래전부터 ‘국가 역량을 집약해 최대한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에서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가능한 성취를 달성하는 것’으로 바뀌어왔으며, 그 공백으로 남겨진 유인우주선은 엘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나 제프 베조스의 ‘블루오리진’과 같은 민간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됐다. 그런 점에서 “오래전에 일어났어야 할 크루 드래곤 발사를 두고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며 비꼰 로스코스모스 대변인의 발언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 러시아, “미국 기업들의 덤핑에 지지 않을 것”

유인우주선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로스코스모스에게 스페이스X의 출현은 ‘비용경쟁’이라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우주산업에 참여하는 민간기업에 대한 미 정부의 지원금은 로스코스모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5년 LA타임스는 스페이스X는 정부로부터 5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스페이스X가 위성 인터넷망 구축 프로젝트 ‘스타링크’에 약 16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는 보도가 미국 매체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저렴한 우주여행"을 외치는 스페이스X의 모습이 로스코스모스에게 곱게 비칠 리 없다. 미 언론은 스페이스X의 성공으로 민간기업들의 우주개발사업 참여가 이어지면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살아남는 난투극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상은 스페이스X와 같은 미국 기업들과 러시아의 로스코스모스가 나라를 대표해 치르는 대리전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로스코스모스도 이미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크루 드래곤 발사 성공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 드미트리 로고진 사장은 지난 4월 향후 발사비용을 30%까지 절감할 계획이라며 “우리의 가격 정책은 미국 예산으로 자금을 조달한 미국 기업들의 덤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라고 강조했다. 로고진 사장은 이어 “미국은 오랫동안 발사체 시장에서 러시아를 밀어내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미국 기업들은 정직한 시장 경쟁 대신 로비를 통한 러시아 제재와 무법적 가격 덤핑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역량을 쏟아부어 최대 효과를 추구하는 우주개발산업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비용경쟁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러 양국의 우주개발경쟁도 2차전에 돌입하게 됐다. 괴짜 사업가 엘론 머스크가 꿈을 이뤘다는 소년만화같은 이야기 뒤에서, 우주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두 나라의 치열한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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