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장혜영 당선인.사진=뉴시스
21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장혜영 당선인.사진=뉴시스

 

정의당 혁신위원장에 장혜영 비례대표 당선인이 만장일치로 뽑혔다. 장혜영 신임 혁신위원장은 24일 혁신위 출범 모두발언에서 "정의당의 혁신은 단순히 정의당만의 혁신이 아니다. '정의롭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시 규정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정당이란 무엇인가, 코로나19시대에 진보정당이 가져야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어떤 혁신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가치의 영역이다. 그 가치를 이뤄나가는 방법에 있어 모든 것을 혁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장혜영 당선인이 정의당 혁신위원장에 선출되면서 그의 과거 행적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장 위원장은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돌연 자퇴를 선언했다. 2011년 ‘이별 선언문’이라는 대자보를 내걸고 학교를 자퇴한 것.

이를 두고 명문대의 기득권을 비판하며 자퇴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하지만 자퇴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명문대의 기득권 비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꿈꾼 청년의 고뇌가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청년 장혜영의 '이별선언문' 전문이다.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나는 06년도에 사과대에 입학한 장혜영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공개 이별을 선언합니다. 나의 이별 상대는 여러분도 잘 아는 연세, 우리 학교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진리하고, 또 진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자유를 진리함이란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웠으며 또한 계속 그러하리라 함을 깨닫는 것이고, 진리를 자유케함이란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 바를 자유로이 펼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날개의 자유를 깨달은 새들이 하염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새들에게 날개의 자유가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믿고 사랑할 것을 선택할 자유, 그렇게 선택한 아름다움을 지켜낼 자유, 즉 `사랑에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깨닫고 소중히 여겨야 할 진실에 가장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요.

문득 생각해봅니다. 만일 연세를 만나지 않았다면, 대학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모든 지점들에 닿을 수 있었을까. 이 느낌들, 생각들을 가질 수 있었을까. 눈 앞의 이 순간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까.

글쎄요. 아쉽지만 이건 그냥 과장된 강조의 수사입니다. 대학에 안 갔으면, 연세에 안 왔으면 또 그 나름 다른 무언가를 만나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느낌들을 가지며 살았겠지요. 우리가 사는 시간은 결코 역행하는 법이 없기에 `만일 내가 그 때 너를 못 만났다면` 같은 가정은 치사한 얘기입니다. 한편 가지 않은 길을 애써 폄하하며 상대적으로 현재를 비교우위에 놓아보려는 시도 역시 참으로 안타깝고 볼품없는 사업입니다.

나는 지금 연세에게 천의 고마움과 천 하나의 아쉬움을 담아 담담히 작별을 고합니다. 고마워, 학교야. 근데 우리 이제 더는 아냐.

감히 말하건대 우리 연애는 연탄재 발로 차도 될 만큼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교정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좁아보여 나는 바야흐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연세와 깨진다 하니 주변에서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다채로운 반응의 구절판을 맛보았습니다. 4년을 다녀놓고 이제 와서 아깝게 무슨 짓이냐. 조금만 참으면 그 또한 다 지나가는 것을. 혹은 네가 배가 불렀구나, 한국 사회에서 고졸로 사는 게 만만해 보이냐.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까지 쿨해보이고 싶냐는 소리까지도 들었습니다.

허나 이 이별에는 아무런 당위도 없습니다. 물론 핑계를 대자면 삼일 밤낮을 주워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안 들더라, 이런 줄 알았는데 저렇더라, 속았다, 지쳤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변심을 변호하기 위해 한 때의 연인을 깡그리 몹쓸 존재로 전락시키는 이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떠나는 까닭은 그저 여름이 가을로 변하듯 내 마음이 어느새 학교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마음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또 다른 긴 사연입니다.

사랑에의 자유,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선배를 둔 우리가 사랑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누가 한 점 부끄럼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까.

나는 이제 연세가 아닌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

재미없는 질문을 몇 개 남기고 싶습니다. 학우 여러분은 학교를 사랑합니까? 예비 학우 여러분은 연세와, 아니 대학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지금 여기 있습니까? 혹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정말 내일이 오나요?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네 명의 해맑은 영국 청년들은 이렇게 노래해 주었습니다. `All You Need Is Love(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에요)`.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 네 명의 청년은 영국 출신 가수 비틀즈다.

장위원장의 대학 자퇴문을 읽은 누리꾼들은 다채로운 반응을 보였다. “참 아름다운 문장이다” “사유 깊은 철학자의 글 같다” “패기 넘치는 거 보면 남아 대장부인 줄 알았는데 여장부였네”라고 말한 이도 있다.

33세, 정치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바깥으로 눈을 돌려 보자. 요즘 페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마리아 안토니에타 알바 재무장관은 35세다. 핀란드 산나 마린 여성 총리도 34세다. 그러고 보면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은 너무 ‘늙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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