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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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두산그룹이 1분기 심각한 실적 부진에 빠졌다. 두산중공업의 경영 악화가 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그룹 정상화를 위한 계열사 매각 작업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4일 ㈜두산은 1분기 연결기준 순손실이 3799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분기 54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적자로 전환했다. 이는 지난 2018년 4분기 524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최대 규모의 적자다. 매출액은 4조4271억원, 영업이익은 909억원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 74.4% 감소했다.

㈜두산의 실적이 악화된 배경에는 그룹 위기의 핵심인 두산중공업이 놓여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두산의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계산한 두산중공업의 1분기 자체 실적은 매출액 1조7000억원, 영업손실 1000억원대로 추정된다. 두산중공업은 15일 분기보고서를 통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 두산중공업 경영진, 실적 부진은 '탈원전 탓'

두산그룹의 심각한 실적 부진이 드러나면서, 탈원전 정책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목소리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자력·석탄발전소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두산중공업의 경영위기가 극도로 악화됐다는 것.

정연인 두산중공업 사장은 지난 3월 10일 노동조합에 보낸 ‘경영상 휴업 시행을 위한 노사협의 요청’에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돼 있던 원자력 및 석탄화력 프로젝트들의 취소로 약 10조원 규모의 수주 물량이 증발하면서 경영 위기가 가속화됐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의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결정된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신규원전 2기 등 총 6개 원전 건설 및 LNG(액화천연가스)발전소로의 전환에 따른 석탄발전소 3건 건설 계획이 제외됐다. 두산중공업은 사실상 국내 원전시장의 독점 사업자로 원전 프로젝트가 취소되면 그 영향이 매출로 직결된다.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경주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심사 중단과 월성1호기 영구정지 결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탈핵시민행동 회원이 '월성 1호기 영구폐쇄 반대! 신한울3,4호기 건설 재개' 집회를 향해 '핵 발전소 폐쇄하자'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경주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심사 중단과 월성1호기 영구정지 결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탈핵시민행동 회원이 '월성 1호기 영구폐쇄 반대! 신한울3,4호기 건설 재개' 집회를 향해 '핵 발전소 폐쇄하자'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두산중공업이 경영 부실의 책임을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산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두산중공업의 자회사인 두산건설의 무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사업이다.

두산건설이 2011년 이후 9년 연속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는 동안,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그룹 경영진 및 오너일가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한 채 ‘밑 빠진 독에 물붓기’를 반복했다. 두산중공업은 2011년 1171억원의 자금 지원을 시작으로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부의 매각대금 3000억원과 두산DST 매각대금 3500억원을 포함해 10년간 총 1조9252억원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두산건설은 결국 지난해 말 상장폐지되고 두산중공업의 완전 자회사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건설의 지분 가치 하락으로 인해 입은 손실도 수천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발전사업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는 목소리도 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채택 이후 국제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화력·원자력 비중이 감소하고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석탄발전 최종투자결정(FID)은 지난 2015년 88GW에서 2018년 23GW로 급감했다. 세계 전력시장 투자에서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기준 16%(원자력 6%)에 불과하다.  반면, 신재생에너지가 세계 전력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40%(총 313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문제는 두산중공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의 70%가 화력발전에 집중돼있으며, 국내 매출과 해외 매출의 비중도 4:6으로 해외 비중이 더 높다는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부상은 두산중공업의 수주 감소로 이어지면서 재무건전성 악화를 가속화했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의 수주 잔고는 14조6000억원으로 2016년(17조2000억원) 대비 2조6000억원 감소했다. 신규 수주 또한 2016년 9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2조1000억원으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반면 두산중공업 매출에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다. 탈원전 정책의 타격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원자력발전의 비중과 탈원전 정책의 추진 시기를 고려할 때, 두산중공업 경영 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다. 

13일 오전 경남도청 정문 입구에서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두산중공업지회, 두산모트롤지회 등 관계자들이 '두산그룹 구조조정 저지 투쟁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3일 오전 경남도청 정문 입구에서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두산중공업지회, 두산모트롤지회 등 관계자들이 '두산그룹 구조조정 저지 투쟁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두산중공업 노조, 공기업화 요구

위기가 확대되면서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것은 직원들이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인건비 절감을 위해 약 2000명의 직원에 대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 노조는 지난 13일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 위기를 책임져야 할 경영진이 구조조정으로 권력을 지키려고 한다”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두산중공업의 공기업화를 요구한다”고 반발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001년 두산그룹이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출범한 회사다.

공기업이 민영화된 후 다시 공기업으로 전환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나마 최근 들어 한전이 2003년 민영화된 화력발전소 운전·정비업체 한전산업개발을 다시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정도다. 한전산업개발은 지난해 말 기준 직원 약 3000명, 연간 급여총액 약 1800억원 규모의 회사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직원 6700명에 연간 급여가 5000억원 수준으로, 명예퇴직이 예정대로 진행돼도 한전산업개발보다 규모가 크다.

설령 공기업화가 진지하게 검토된다고 해도, 한국중공업 시절 지분을 가지고 있던 산업은행과 한국전력이 섣불리 나서기는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기업지원에 나서고 있는 산업은행이나, 올해 1분기 흑자전환 전까지 3년간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이 두산중공업을 다시 품기는 쉽지 않기 때문.

두산중공업 노조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공기업 전환 카드까지 꺼내게 된 배경에는, 발전산업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두산건설에 집착한 경영진의 반복된 오판이 놓여 있다. 두산그룹은 올해 1분기 배당을 하지 않고 오너일가의 사재를 출연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태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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