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몬 어드벤처. 사진=토에이 애니메이션

 

여기 집 앞 공원이 아닌 ‘사이버 탑골 공원’에서 ‘만화 주제가’를 들으며 추억을 이야기하는 ‘어른이’들이 있다. 복고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 왔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집콕족’들이 늘어나면서 현상은 더 확대되고 있다.

 

유튜브 영상 댓글 갈무리.
유튜브 영상 댓글 갈무리.

 

‘사이버 탑골 공원’의 인기 영상

이 어른이들의 사이버 탑골 공원은 만화 주제가들로 꽉 들어찬 노동요 영상으로, 이 영상은 조회수가 무려 135만에 육박한다. 여기서 노동요는 노래를 듣는 동안 정신적 고통이나 지루함을 덜어 결과적으로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듣는 노래를 일컫는다. 

댓글에는 과제나 업무의 연장선에서 허덕이는 20·30들이 익숙한 멜로디의 만화 주제가들을 들으면서 각자의 추억을 공유하며 위로 받고 있었다. 네티즌들은 “90년대 만화는 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다”, “현재 기술은 발전했지만 감성은 90년대가 최고다. 기술이 더 발전할수록 이런 감성은 더 얕아지겠지” 등 의견에 크게 공감했다.

만화 주제가 커버 영상들도 또 하나의 탑골 공원이 되고 있다. 이전부터 많은 보컬 유튜버들이 만화 주제가 커버 영상을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어 왔고, 툴라(TULA), 정여진, 전영호 등 많은 애니송 가수들이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며 이 열풍에 가세하며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갈무리.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갈무리.

 

‘디지몬 어드벤처’ 추억 20~30, 펀딩 참여

소비주체가 된 20·30들이 만화 주제가를 통해 향수에 젖게 되면서, 되살려진 추억은 자연스럽게 소비 심리 자극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커버 영상이나 노동요 영상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앨범 제작 펀딩 등 적극적인 소비 참여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 16일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 OST 한국어 앨범 제작을 위해 시작된 크라우드 펀딩이 13억 원이 넘는 후원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당초 목표액이었던 3500만원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디지몬 어드벤처의 OST였던 ‘버터플라이(Butter-fly)’를 불렀던 가수 전영호는 지난달 6일 20주년 기념 앨범 발매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자본이 필요한 사업자가 대중을 상대로 직접 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국내 버전의 저작권은 원작자에게 승인을 받아 해결됐지만, 음원 제작비, 음원 저작물 사용료 등 현실적인 문제를 펀딩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디지몬 어드벤처’를 추억하는 20·30들이 펀딩에 대거 참여하며 펀딩 성공으로 이어졌다. 대학생 강모씨(24)도 해당 펀딩에 참여했다. 강씨는 “노래를 들으면 만화를 보던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면서 “어릴 때 아무 생각없이 들었던 노래 가사가 지금 보면 가슴에 와 닿기도 한다”고 펀딩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세대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크라우드 펀딩 앨범 제작 성공은 앞서 지난해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 프로젝트’가 첫 스타트를 끊었다. 애니메이션 ‘달빛천사’에서 주인공 ‘루나’의 성우를 맡았던 성우 이용신이 진행한 이 펀딩은 7만명 이상의 후원자가 모여 26억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한 바 있다.

 

사진=
유튜브 '괴짜가족 오프닝' 영상 댓글 갈무리.

 

추억의 매개체로 등장한 ‘만화 주제가’

그렇다면 ‘만화 주제가’의 무엇이 20·30을 자극하길래, 그들은 이 노래들로 한마음이 될까? 이유는 앞서 강씨가 밝힌 펀딩 참여 이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만화 시작 전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오프닝 송’을 듣게 된다. 화려한 장면들로 한껏 꾸며진 영상에 곁들여진 노래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반복적으로 보고 들으며 귀에 익은 멜로디를 다시 듣게 됐을 때, 좋아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 브라운관 TV 앞을 지키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것. 일례로 만화 주제가 영상 댓글 중 “이 만화를 그리워하는건지. 이 만화를 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건지”라는 댓글이 큰 공감을 사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 긴 만화 영상을 다시 보지 않고도 1분 안팎의 시간을 들여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도 주제가가 추억의 중심이 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고 다시 마주한 가사의 호소력도 크게 작용했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인생을 다룬 가사들이 사회생활을 하게 된 지금은 크게 공감된다는 것. 또 만화 특성상 꿈, 희망, 용기 등을 강조하는 순수함이 오히려 지금 더 힘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언급된 ‘버터플라이’ 역시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 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라는 소절이 사회초년생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렇듯 수많은 복고 컨텐츠들이 유행하고 있고, ‘만화 주제가’는 이 현상을 잘 드러내는 일례일 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고, 옛것을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 풍조가 젊은 세대 안에 자리잡으며, 이들이 어릴 적 즐겼던 콘텐츠들이 재유행하고 있다. 이제까지 ‘써니’, ‘응답하라’로 대표되는 7080이 복고 유행을 주도했다면, 최근엔 유행의 주체가 80년대 후반~90년대생들로 재편됐다. 복고 바통을 이제 막 이어받은 20·30들의 ‘추억팔이’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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