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1인당 1000달러의 현금지급을 포함한 경기부양 패키지 지원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1인당 1000달러의 현금지급을 포함한 경기부양 패키지 지원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우리는 모든 국민들에게 즉시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1인당 1000달러(한화 124만원)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실물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은 위기 극복을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재난기본소득 선언은 의미가 남다르다. 현금 보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정책 기조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성격의 정책이기 때문.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급여세 감면 등을 통해 코로나19로 둔화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급여세 감면보다 직접적인 현금 보조가 필요하다며 말을 바꿨다.

◇ 공화당 주류, 재난기본소득 필요성 공감

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식의 지원책은 공화당은커녕 민주당 내에서도 진지하게 거론되지 않았다. 월 1000달러의 보편기본소득(UBI)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앤드류 양 민주당 경선 후보가 사실상 미국인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받은 유일한 기본소득 지지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소수의 급진적 정치인들만 논의하던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공화당 내 보수파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주장하는 핵심 이슈가 돼버린 것.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붙었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16일 모든 미국 성인에게 10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롬니 의원은 2012년 당시 “오바마식 복지제도에서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받지 않아도 정부가 현금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오바마 전 대통령의 복지정책을 비난한 바 있다. 

롬니뿐만이 아니다. 톰 코튼 상원의원은 17일 트위터를 통해 하원을 통과한 코로나19 지원책에 대해 “유급 병가 및 세금 환급 등으로 구성된 하원안은 신속한 위기 대응이 어렵고, 기업의 고용 부담을 경감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며 “대량 실직 사태를 지켜보고 싶지 않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모든 가족들의 손에 현금을 쥐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코튼 의원은 복지 혜택 수혜 기준을 강화하고 장애가 없는 실직자는 건강보험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공화당 내에서도 초강경파로 분류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7일 트위터에서 재난기본소득 아이디어에 초당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7일 트위터에서 재난기본소득 아이디어에 초당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 보수 성향 경제학자도 '현금 지급' 필요성 강조

이처럼 공화당 주류파가 현금 지급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우호적으로 돌아선 것은 경제학계에서 이에 대해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학계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진보적 경제학자들뿐만이 아니다. 조지 부시 전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지내는 등 보수적 경제학자로 알려진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블로그를 통해 “슬프지만, 많은 사람들이 6개월치 생활비조차 저축해두지 않은 상태”라며 “모든 미국인들에게 1000달러를 즉시 지급하는 것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좋은 시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헬리콥터를 통해 모든 미국인에게 1000달러를 살포하라”고 요구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도 17일 트위터를 통해 “1000달러의 현금 보조 아이디어가 초당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며 정계와 학계에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과 래리 커들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1인당 1000달러’ 정책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코로나19 태스크포스는 16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대책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에서 최대 22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료=임페리얼 칼리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코로나19 태스크포스는 16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대책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에서 최대 22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료=임페리얼 칼리지

◇ 트럼프, 경기 부양 패키지 1조 달러 이상 상향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트럼프 정부 및 공화당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알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가 발표한 보고서 내용에 충격을 받고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영국 정부가 아무런 대응조치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각각 최대 51만명, 22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피해가 확인되는 상황에서, 향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겹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현금 지급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꿨을 수 있다.

실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경기부양 패키지의 총 지원 규모는 기존 85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 이상으로 크게 상향됐다. 패키지는 소상공인 대출 3000억 달러, 안정자금 2000억 달러, 현금지급 2500억 달러 등으로 구성됐으며 납세기한 연장 등에 따르는 비용을 감안하면 총 1조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기자회견에서 “고통받는 미국 가정에게 즉각적인 현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설득됐다”며 “과감한 지원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인 재정정책이 보수주의자들의 신념까지 뒤바꾼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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