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경선레이스 초반 아이오와, 뉴햄프셔에서 연이은 패배를 당하며 힘겨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사진=조 바이든 전 부통령 선거캠프 홈페이지 갈무리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경선레이스 초반 아이오와, 뉴햄프셔에서 연이은 패배를 당하며 힘겨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사진=조 바이든 전 부통령 선거캠프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로 점쳐지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위기에 빠졌다. 경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혔지만, 경선레이스 첫 두 번의 전투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기 때문.

민주당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경선레이스의 출발을 알린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는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이어 벌어진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선두를 차지했다. 

하지만 당내 ‘과격파’로 불리는 샌더스 의원과 경선 전 지지율 3위권 내에 든 적이 없는 부티지지 전 시장의 양강 체제를 이룬 것보다도 유력한 1위 후보 바이든 전 부통령의 몰락이 더 놀랍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아이오와에서는 샌더스·부티지지와 큰 격차를 보이며 4위에 머물렀고, 개표가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뉴햄프셔에서도 5위가 확정적이다. 반면 양강 체제를 형성한 두 후보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사이좋게 1, 2위를 나눠 가졌다.

◇ 바이든, 왜 표심 잃었나?

바이든 전 부통령의 몰락은 그가 경선 전 보여줬던 확장성과 안정성 때문에 더욱 놀랍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선 전 그와 함께 3강 구도를 이뤘던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급진적인 정치성향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우려를 샀지만, 바이든 전 부통령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중도보수 성향의 공약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그는 중도층뿐만 아니라 마음을 정하지 못한 ‘스윙 보터’(Swing voter)의 표심까지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으로 국정을 함께한 경력은 ‘오바마 향수’에 빠진 유권자들을 결집하는데 강력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바이든 전 부통령의 이러한 장점이 경선 레이스 초반 빛을 잃고 있다. 양극화된 미국의 정치지형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중도성향은 중간지대를 장악할 ‘확장성’이 아닌, 누구도 매료시키기 힘든 ‘무난함’으로 여겨진다. 트럼프 정부에 맞서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표심도 더욱 급진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샌더스 의원에게 쏠린다.

‘오바마 향수’ 또한 부티지지 전 시장에게 향하는 모양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젊은 소수자 후보’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부티지지 전 시장은 오바마 정권의 핵심 인사들로부터 공식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등 ‘제2의 오바마’로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선거 전략의 문제도 지적된다. CNN은 13일(현지시간)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의 실패는 바이든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며 “그의 메시지는 혼란스럽고, 활력 없는 캠페인 이벤트에서 말을 더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CNN은 이어 “그의 선거캠페인 이벤트에는 민주당원들이 선두주자에게 기대한 짜릿함이 부족하다”며 “민주당원들은 2008년과 2012년 활력 넘치던 부통령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CNN은 바이든 선거캠프에 가까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지층을 지키려면 확신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고 있다”며 “바이든 지지자들은 충성도가 높지만, 이탈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밝혔다. 

◇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역전 노려

두 번의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바이든 전 부통령은 “50개 주에서 2개주의 결과가 나왔을 뿐”이라며 역전을 자신하고 있다. 당장 다음 경선 지역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는 흑인 유권자 비중이 높아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유리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오바마 향수’를 놓고 바이든 전 부통령과 다투고 있는 부티지지 전 시장의 경우, 시장 재임 시절 인종스캔들의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매우 낮아 저조한 결과가 점쳐진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선 행보를 뒤따르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2월 치러진 4번의 경선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결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당선됐다. 경선 출발점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4위를 기록한 것도 바이든 전 부통령과 동일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같은 해 3월 3일 열린 7개 경선 중 조지아에서 1위, 콜로라도와 매릴랜드에서 2위로 선전하며 이후 경선에서 기세를 올렸다. 바이든 전 부통령 또한 향후 경선에서 충분히 역전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문제는 ‘1992년 클린턴’과 ‘2020년 바이든’의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아이오와에서 4위를 기록한 뒤 뉴햄프셔에서도 5위로 내려앉은 바이든 전 부통령과 달리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시 두 번째 경선 지역인 뉴햄프셔에서 2위를 기록해 기세를 회복했다. 뉴햄프셔에서의 선전으로 당시 그를 괴롭히던 불륜스캔들을 떨쳐버린 클린턴 전 대통령은 치밀한 선거전략으로 ‘역전 주자’로 나설 수 있었다.

게다가 1992년 경선에서 아이오와주는 현지 상원의원인 톰 하킨의 텃밭이었다. 이미 결과가 뻔한 만큼 주목도가 낮았고, 경선 결과도 다른 후보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실제 그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무려 76.6%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이후 경선 과정에서 저조한 결과를 보이며 클린턴의 경쟁자로 나서지는 못했다. 

반면 2020년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는 박빙의 결과를 연출하며 부티지지·샌더스 양강 구도를 연출해 바이든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유력한 선두주자라는 이미지가 무너진 것이 크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미래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닌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인 것 아니냐는 비관론도 나온다. 정치명문가 부시 가문의 차남으로 2016년 공화당 경선의 유력 후보로 떠올랐던 부시 전 주지사는 아이오와·뉴햄프셔·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연이어 참패를 당한 뒤 후보에서 사퇴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역전 가능성은 오는 22일 네바다,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시 전 주지사 중 누구의 전철을 밟게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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