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홍콩 시위를 취재 중이던 영국 출신 프리랜서 기자 토미 워커가 홍콩 경찰이 발포한 고무총탄에 맞고 쓰러져 있다. 사진=토미 워커 트위터 갈무리
지난달 29일 홍콩 시위를 취재 중이던 영국 출신 프리랜서 기자 토미 워커가 홍콩 경찰이 발포한 고무총탄에 맞고 쓰러져 있다. 사진=토미 워커 트위터 갈무리

영국 출신의 여행작가 겸 프리랜서 기자가 홍콩 시위를 취재하던 중 고무총탄에 피격당한 경험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홍콩에서 활동 중인 토미 워커는 지난 5일(현지시간) 호주 매체 ‘뉴스닷컴’에 올린 기고문을 통해, 지난달 29일 홍콩 완차이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 상황과 고무총을 활용한 홍콩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방식에 대해 회고했다.

워커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최루탄을 사용해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분산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이러한 폭력적 진압방식이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시위대를 자극했다. 저녁이 되자 시위대의 규모는 점차 확대됐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완차이 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워커는 당시 홍콩의 상황을 “도시의 모습을 한 지옥”이라고 묘사했다. 워커에 따르면,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들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과 같은 분위기였으며, 거리는 최루탄 연기와 화염병에서 번진 불길로 휩싸여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워커가 고무총탄에 피격당한 것은 동료 기자들과 함께 시위대에 근접해 촬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워커는 “몇 발의 총성이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서 들려왔다. 갑자기 복부에 충격을 느꼈고, 내가 고무총탄에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하려고 시도했다. 몸을 돌려 전선에서 벗어나자 시위대와 의료진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라고 긴박했던 순간을 회고했다.

워커는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온 시민들에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안심시켰지만,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위대열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동안 이마에 고무총탄 한 발을 더 맞은 것.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어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총탄이 조금만 아래를 향했더라면 미간에 명중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워커는 “그때부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며 “경찰이 조준하지도 않고 고의로 발포 중이라는 것이 명백했다”고 말했다.

이후 최루가스까지 고글 안쪽으로 새어들어와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한 워커는 거리의 한 가게에 들어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워커는 “길 건너편에 위치한 가게를 발견하고 뛰어들어가 쓰러졌다. 거기서 주위를 살핀 뒤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워커가 이날 고무총탄에 피격당한 유일한 기자는 아니다. 워커는 “하루가 지난 뒤, 내가 부상을 입은 유일한 기자는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며 “최루탄과 후추 스프레이, 고무총탄 등으로 인해 최전선에서 몇몇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워커와 마찬가지로 현장을 취재 중이던 인도네시아 ‘수아라 홍콩뉴스’의 베비 인다 기자는 경찰이 발포한 고무총탄에 오른쪽 눈을 맞아 영구 실명했다. 베비 인다 기자의 법률대리인은 홍콩 경찰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하고 고무탄을 쏜 경찰관의 신원 정보 제공을 요청한 상황이다

워커는 이처럼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홍콩 시민들의 헌신과 연대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워커는 당시 시위대의 모습을 1989년 발트3국에서 200만명의 시민들이 620km의 인간띠를 만들어 평화시위를 했던 ‘발틱웨이’의 재현이라고 묘사하며, “언덕 위에 세워진 ‘자유 홍콩’의 팻말과, 홍콩의 새 국가 ‘홍콩에 영광을’이 울려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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