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홍콩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BBC 방송화면 갈무리>

범죄자 인도 법안을 둘러싼 홍콩 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법안 심의를 강행하려는 홍콩 의회와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법안을 홍콩에 대한 사망선고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홍콩 의회인 입법회는 내일 오전 11시부터 '범죄인 인도 법안' 2차 심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홍콩 정부가 추진 중인 이 법안은 중국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도 신병을 확보한 범죄자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 정부가 홍콩에 머무르고 있는 반중인사나 인권운동가를 본토로 송환하는데 악용할 수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지난 9일에는 홍콩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3만명이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반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인권보장 방안을 추가하겠다면서도 예정대로 12일(현지시간) 심의를 강행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서방 언론에서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 통과될 경우 아시아 금융허브로 불려온 홍콩의 명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예측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포브스는 홍콩 반환 2년 전인 1995년, 자유시장의 상징인 홍콩이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에 편입될 경우 활기찬 상업·금융허브로서의 역할에 사망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며 ‘홍콩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홍콩 기업가들은 24년 전 포브스의 우려가 재현될 수 있다며 법안 반대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익명의 한 사업가는 1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의 가치는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독립된 사법체계와 법치, 언론의 자유를 통해 완화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며 “홍콩의 비즈니스 리더들이 범죄인 인도 법안에 따른 리스크를 평가하고 홍콩의 대체 장소를 물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 반대시위에 참여한 케빈 얌 변호사 또한 “이 법안은 홍콩과 중국 사법시스템의 장벽을 허물게 될 것”이라며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홍콩에서의 사업에 대한 확신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홍콩 시민들은 법안 심의가 예정된 12일 대규모 연대 파업·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9일 시위를 이끌었던 시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12일 입법회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며, 노동운동단체들 또한 연대 파업을 실시하겠다고 경고했다. 홍콩 내 100여개 기업과 점포도 12일 하루 동안 영업을 중단하고 시위에 참여할 예정이다.

다만 친중파가 장악한 홍콩 입법회 구성 상 법안 저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범죄인 인도 법안이 통과되 금융허브 홍콩에 ‘사망 선고’가 내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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