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 씨가 치료감호소로 이동하기 위해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최근 발생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으로 인해 정신질환자에게 잠재적 범죄자의 낙인이 새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의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우발적 범행을 예방하기 위한 치료시스템이 부실하다며, 범죄자 낙인을 부여하기에 앞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강서구 PC방 범죄, 여론은 분노, 학계는 치료시스템 지적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용의자 김성수씨가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로 인해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을 우려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이유로 형량이 줄어들어서는 안된다며 김씨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23일 오후 4시 현재 99만2482명이 동의한 상태다.

반면 의학계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심신미약과 정신질환의 정확한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20일 입장문을 내고 심신미약상태의 결정은 단순히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 있는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며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은 동일선상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법정에서도 정신질환에 의한 심신미약이 인정될 확률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JTBC가 22일 이혜랑 대구지방법원 판사와 최이문 경찰대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4~2016년 심신장애가 쟁점이 된 사건 1597건 중 심신장애가 인정된 경우는 305건으로 약 19.1%에 불과했다. 또한 실제로 정신감정을 거친 경우로 한정할 경우도 인정율은 약 47%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이는 정신질환이 바로 심신미약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범행 당시의 심신미약 상태였는지를 재판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협회는 “가해자의 범죄행위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하여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추어 지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정신질환은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정신질환자의 범죄율, 비질환자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그렇다면 정신질환이 실제로 강력범죄를 야기하는 원인일까? 통계자료는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인 반면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1.2%로 정신질환자에 비해 1.5배 높았다. 이후 정신질환과 범죄와의 연관성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에서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정신질환자 범죄라면 떠올리는 강력범죄의 경우에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더 낮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4월 대검찰청 및 보건복지부 통계를 종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비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율은 인구 10만명당 68.2명인 반면, 정신질환자의 경우 33.7명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강력범죄의 잠재적 원인으로 오해받고 있는 조현병 또한 치료와 관리를 받을 경우 범죄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전체 범죄 중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율은 0.04%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강력범죄의 위험성이 현저히 낮은 편이다.

다만 정신질환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행위가 분명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건수가 점차 증가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문제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지난 2015년 6300여건에서 지난해 8300여건으로 약 2000건 가량 증가했다. 더욱 큰 문제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중 강력범죄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중 강력범죄 비중은 9.71%로 비정신질환자(1.46%)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자료=보험연구원 이정택 연구위원 '정신질환자의 범죄와 사회적 인식 개선'(2017) 발췌>

◇ 정신질환 범죄 예방 위해 인프라 구축돼야

정신질환자에 대한 범죄통계는 정신질환 자체에 내재한 폭력성보다는 적절한 관리와 치료의 부재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법무부는 지난 2016년 12월, 정신질환자들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가벼운 범죄에도 치료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외래치료명령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바 있다. 개선된 치료명령제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가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을 유예하는 대신 치료 및 보호관찰을 명령할 수 있다. 만약 치료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집행유예를 취소하거나 유예된 형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치료명령제도가 실제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정인 이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지난 1월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대상자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지역사회 인프라가 부족하고 법원 등 유관기관의 이해 부족으로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치료명령 대상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재활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보호관찰관 인력 충원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양 원장이 지적한대로 정신질환자의 재범 방지를 위해 실무를 담당할 보호관찰 인력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2017년 기준 보호관찰 인력은 총 1356명으로 1인당 평균 203명의 인원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45명에 비교할 때 약 5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처럼 보호관찰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신질환자 재범 방지를 위한 세심한 케어가 가능할 리 없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치료감호소도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유일의 치료감호시설인 공주치료감호소의 경우 지난해 기준 수용인원은 총 1091명으로 정원 840명을 30%나 초과한 수치다. 반면 간호사·조무사 등 근무 직원은 겨우 238명으로 직원 1명당 4.58명의 정신질환자를 관리해야 한다. 치료감호시설 부족으로 지난 2015년 국립부곡병원 내 사법병동이 신설됐지만, 이곳은 병상이 50개뿐인데다 별도의 실외운동장도 없어 장기 실내 수용으로 인한 수용자들의 스트레스 증가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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