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대한 필요성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국회에서 벌어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요구 집회 장면.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최저임금 인상 논란으로 영세·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가맹수수료 및 임대료 부담을 줄여 소상공인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취약 근로계층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국회에서도 점차 취약 계층과 소상공인 간의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최우선 과제라고 보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업종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 문제(최저임금 인상)는 을과 을, 혹은 을과 병의 갈등으로 몰아가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며 “더불어민주당은 소상공인들을 위해 카드수수료 제도 보완과 9월 정기국회에서 상가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민생입법 처리에 최우선으로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5년으로 제한하는데다 적용대상이 제한적이어서 ‘을’의 입장을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차지차가법’을 참고해 현행 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991년 일본에서 제정된 차지차가법은 건물 소유를 목적으로 한 지상권과 토지임차권의 존속 기간 및 그 효력, 건물 임대차계약 갱신과 그 효력 등을 규율하는 특별법으로 기존에 분산돼있던 관련 법안을 통합한 것이다. 일본 차지차가법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임차인을 약자로 간주한다는 것. 국내법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보증금액’(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 이내의 임차인만 보호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차지차가법은 모든 임차인을 대상으로 한다.

차지차가법의 핵심은 임차인을 약자로 인식하고 임대인에게 ‘갑질’을 할 여지를 크게 제한해놓았다는 점이다. 우선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해약 통고를 할 수 없으며, 계약 기간이 만료해도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유일한 예외는 임대인이 일정 기간 부득이하게 부재하는 경우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철거될 건물을 계약하는 경우뿐이다. 게다가 철거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하는 것도 건물이 붕괴 상태에 이르러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만 가능하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해도 임대인이 특약 체결 시 직접 사정을 설명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한마디로 임차인이 영업을 그만두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면 계약갱신이 거절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국내법의 경우 ▲임차인이 3차례 이상 임대료를 연체한 경우 ▲임차인이 계약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경우 ▲임대인이 일정한 보상을 제공하기로 임차인과 합의한 경우 ▲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 전대한 경우 ▲임차인이 건물 일부를 파손한 경우 ▲임대인이 건물을 철거·재건축하는 경우 ▲그 밖에 임차인이 의무를 위반하거나 임대차계약 지속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경우 등 “정당한” 계약갱신 거부사유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차지차가법에 비하면 보호 수준이 느슨한 셈이다.

임대료 증액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행 규정은 임대료 증액 상한선을 5%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5년간의 계약기간 내에만 적용된다. 재계약은 계약의 ‘갱신’으로 규정되기 때문이 5% 이상의 증액 요구도 가능하다. 계약기간 중에도 경제사정의 변동이나 조세·공과금 등의 부담을 이유로 임대료 증액을 청구할 있는데, 국내법의 임차인 보호수단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비율에 따를 것"이라는 규정과, "증액 후 1년 내 다시 증액 청구를 할 수 없다"는 규정뿐이다.

차지차가법 또한 임대인이 임대료 증액을 청구할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만 협의 과정에 사법부가 개입해 갈등을 중재한다. 만약 임차인이 임대인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 재판을 통한 법원 조정에 따라 새 임대료 수준을 결정한다. 물론 재판 과정 동안 임차인은 기존의 임대료를 공탁하면 된다. 즉, 법원이 임대료 갈등에 자연스럽게 개입하면서 과도한 인상을 규제하고 있는 것.

국내에도 차지차가법과 같이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이미 여러번 발의된 바 있다. 지난 2016년 7월 발의된 박주민 의원안의 경우 현행법에서 ‘환산보증금’을 삭제해 모든 임차인에게 보호법을 적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같은 해 6월에 발의된 홍익표 의원안도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2016년 7건, 2017년 11건, 2018년 6건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발의됐음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에 상정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국회에서도 다수의 의원들이 임차인 보호의 문제에 공감하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있는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는 것. 일본의 ‘차지차가법’과 같이 ‘을’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궁중족발' 사태가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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