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최저시급 인상에 따른 지원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영세·소상공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점포 유지도 어렵다는 소상공인들의 불만과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취약 근로계층의 목소리가 부딪히면서, 최저임금 논란이 점차 ‘을’들의 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 소상공인 업종별 차등화 방안’을 부결시킨 것에 항의하며 내년 최저임금안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연합회는 “‘지불능력의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관계당국과 최저임금위원회가 무시했기 때문에 결과의 책임도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며 "2019년도 최저임금과 관계없이 소상공인 사업장의 사용주와 근로자 간 자율합의를 통해 임금을 결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또한 12일 기자회견에서 ‘2019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최저임금 인상 결과에 따라 전국 7만여 편의점의 동시 휴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 측은 “만일 (올해처럼) 대폭 인상되면 편의점 운영이 한계상황에 이르러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게 된다”며 “결국 점주들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영세·소상공인들의 집단적인 최저임금 반대움직임에 대부분의 보수 언론들은 지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13일 주요 일간지의 사설 제목은 “알바가 더 벌 지경"… 오죽하면 편의점주들이 나섰을까”(한국경제), “나를 잡아가라"는 308만 소상공인들의 절규”(중앙일보), “오죽하면 소상공인들이 "나를 잡아가라"고 나서겠나”(세계일보)“'소상공인 삶 뿌리째 뽑히고 있다'는 이유 있는 절규”(문화일보) 등으로 영세·소상공인의 주장을 지지하며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반면 노동계는 소상공인들의 반발 움직임에 대해 최저임금 논란이 ‘을’들의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 임대업자 등이 나눠져야 할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부담이 소상공인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 노동계는 지나치게 높은 가맹수수료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미뤄지고 있는 임차인 보호법 등의 문제를 해결해 소상공인에게 집중된 부담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가맹본사와 점주들의 비대칭적인 분담구조는 최저임금 이상으로 소상공인들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 CU, GS25, 세븐일레븐 등의 편의점 수익배분률은 약 60~70% 수준이다. 점주의 초기투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완전가맹형의 경우 80%의 수익배분률이 보장된다. 일단 가맹점이 영업을 시작하면 본수는 꾸준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영업 시작 이후 들어가는 추가 부담은 대부분 점주들의 몫이 된다. 가맹본사의 부담은 광열비 및 폐기로스 일부 지원, 저매출점포 최저수익 보장 정도다. 점주들은 차후 소요되는 인건비, 임대료, 가맹수수료 등 제반 운영비뿐만 아니라 할인 행사 등 이벤트, 추가 인테리어 설치, 광고 비용 등을 전부 떠안아야 한다. 가맹본사의 단일 공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경영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독자 사업을 전개할 자율권도 없다. CU, GS25, 세븐일레븐 등의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이 아닌 경우 수익분배율을 최소 5~10%가량 차감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조차 점주가 마음대로 결정하기 어렵다.

치솟는 임대료 부담도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게다가 계약 갱신기간이 겨우 5년으로 지속적인 영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도 영세사업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국회에서는 보증금 및 임대료 인상안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고 계약 갱신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다수가 계류 중이지만 후반기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카드결제가 잦은 영세 점포의 카드수수료 부담도 소상공인들의 저소득을 조장하는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13일 오전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카드수수료가 굉장히 세서 결제금액에 상관없이 100원씩 떼어간다”며 “수수료와 관련해 소상공인, 편의점주들의 부담을 줄여줄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오는 31일부터 밴수수료 체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해 골목상권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납품단가에 최저임금 인상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발표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결정 애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중소제조업체 300개사 중 34.9%가 대기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가를 결정한 후 합의를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 이중 62.8%는 별다른 대책 없이 대기업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다고 밝혔으며, 제조공정 개선 등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겨우 9.3%에 불과했다.

특히 중소제조업체들은 제조원가 구성 요인 중 납품단가에 가장 반영되지 않는 요인으로 노무비(47.9%)를 꼽고 있다. 중소제조업체가 거래관계 단절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저임금 인상분을 단가에 반영해달라고 대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현재의 하청 구조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편, 노조 측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을’ 간의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서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5명은 “소상공인ㆍ영세 자영업자가 겪는 어려움의 근본은 재벌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불공정거래 행위에 있다”며 영세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건의서를 제출한 상태다. 민주노총 또한 지난 10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와 합동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1만원과 상가 임대료ㆍ카드 수수료 제한 등 소상공인 지원책을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주요 일간지들은 가맹수수료, 납품단가 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노동계의 목소리에 대하여 책임 떠넘기기라며 비난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이날 “최저임금 책임, 인건비 아닌 ‘가맹비·임대료’에 떠넘기는 勞”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수용의 어려움이 소상공인 생존권 압박과 반발의 본질인데도,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지목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이 미칠 영세 자영업자 압박 책임을 엉뚱하게 대기업에 전가하는 것”이라며 노동계 주장을 반박했다. 

 ‘을’의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는 최저임금 사태에 정부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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