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열린 제9차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회의 모습. 보편요금제 등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나 정부, 시민단체, 이동통신사 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이동통신사와 소비자·시민단체가 보편요금제 도입과 관련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9차 회의에서 시민단체 대표들은 이통사가 자율적으로 보편요금제에 준하는 저가요금제를 도입할 경우 법제화를 유보하겠다며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으나, 이통사는 여전히 반대의견을 고수했다.

이통사는 국내 요금제가 해외 주요국가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시장자율에 맡겨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신규요금제 도입 시 정부에 사전 신고 후 인가를 받아야 하는 절차를 사후 신고제로 완화할 경우 통신사 간의 경쟁이 활성화돼 요금 인하도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는 논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이다. 과기부는 지난해 6월 현행 요금인가제를 유보신고제로 전환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상황이다.

반대쪽에서는 규제완화가 과연 요금인하로 이어질 것이냐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격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원인은 규제가 아니라 SKT, KT, LG유플러스 등 3사가 5:3:2 수준으로 이동통신시장을 나눠가지고 있는 극단적 과점체제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3개 통신사의 데이터중심 요금제를 살펴보면 가격과 데이터 제공량, 부가 옵션까지 대부분 동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저렴한 데이터요금제의 경우 SKT의 ‘band 데이터 세이브’는 3만2900원에 집·이동전화·문자메시지 무료, 부가통화 50분, 데이터 300MB를 제공한다. KT의 ‘데이터선택 32.8’은 3만2890원에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차이점은 부가통화 제공이 30분이며 남은 데이터를 이월하거나 미리 당겨쓰는 ‘밀당’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LG유플러스의 ‘데이터일반’은 3만2890원에 SKT와 같은 옵션을 제공하지만 비디오 전용 데이터 300MB 추가 제공하는 점이 다르다.

상위 요금제로 올라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백원 단위의 요금에서 차이가 있을 뿐, 부가적인 옵션을 제외한 데이터 제공량은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다. 무제한요금제의 경우에도 기본제공량 소진 시 매일 2GB의 추가 데이터를 제공하고, 이를 초과하면 3Mbps의 낮은 속도로 데이터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3개 이동통신사의 데이터중심 요금제. 통신사 간 차별점이 거의 없는 동일한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자료=각 통신사 홈페이지>

이는 통신 3사가 가격 경쟁을 하기보다는 서로의 요금제를 참고해 유사한 요금제를 출시하고 있기 때문. 국내 이동통신시장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SKT가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면 KT와 LG유플러스도 비슷한 수준의 요금제를 따라 출시하면서 사실상 3사의 요금제 구조가 동일해졌다. 이 때문에 저렴하게 데이터요금제를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통신사와 상관없이 동일한 선택지를 강요받게 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통사 요구대로 요금인가제를 폐지한다고 가격 경쟁이 발생하리라는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내 통신시장의 과점체제를 해소하고 통신요금 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등의 보완책 없이 이통사 요구대로 요금인가제만 폐지할 경우, 국내 통신시장의 과점체제가 고착화되고 담합을 통한 요금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저소득층의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의 방침과도 반대된다.

이날 회의에 참여한 경실련, 참여연대,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등 4개 시민단체는 이통사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난하며 협의회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본료 폐지 및 보편요금제 도입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평행선을 달리는 소비자와 이통사의 대립 사이에서 정부가 어떻게 균형을 잡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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