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스포츠의 천국이다. 국제화된 모든 스포츠를 사는 곳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전문화된 스포츠 직종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체력단련부터 근육 강화 훈련, 재활 치료에 이르기까지 트레이너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인 트레이너 정정인(36)씨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뉴욕의 ‘원온원 피지컬쎄러피 클리닉’의 전문 트레이너인 그는 고교부터 대학, 프로풋볼팀의 수많은 유망 선수들을 양성하는데 일익을 맡고 있다.

공인운동선수트레이너(ATC) 등 미국운동선수트레이너협회(NATA)와 미국스포츠재활협회(NSAM) 등 미 전역을 커버하는 6개 단체의 자격증을 보유한 그는 대학에서 10개 스포츠의 트레이너를 맡는 등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있다. 경희대 체육학과(95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와 각고의 노력 끝에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현재 그가 맡은 주요 선수로 프로미식축구(NFL) 뉴욕 제츠의 수비수(Free Safety)인 재럿 자이콴이 있다. 지난해 템플대를 졸업하고 필라델피아 이글스에 지명된 그는 팀훈련 중 어깨를 다치는 불운을 당했다.

시즌을 앞두고 제츠로 이적한 그는 올해 주전 도약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주에 두 번씩 치료를 받은 어깨는 거의 완쾌됐고 얼마 전 훈련하다 다친 발목 치료를 받고 있다. 정정인씨는 “힙 모빌리티(엉덩이 유동성)가 많이 떨어져 근육 운동과 집중적인 스트레칭을 병행하고 있다”면서 “4월 초 팀 훈련에 정상합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재활치료로 큰 효과를 본 그는 사우스쇼어 하이스쿨에서 농구와 풋볼을 하고 있는 동생도 데려와 관리를 부탁했다. 성장기 선수일수록 과학적인 훈련이 기량 향상과 부상 방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선수로는 올 가을 농구명문 U-Conn(코네티컷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는 슈팅가드 토렌스 새무엘이다. 그가 많은 유망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은 소속된 ‘원온원 피지컬쎄러피’가 뉴욕의 공립학교 스포츠팀이 소속된 PSAL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주일에 3~4번씩 고교 경기에 합류해서 선수들의 훈련과 치료를 돕고 있다. 최근에는 맨해튼에서 열린 고교 육상경기와 퀸즈의 세인트 존스 대학의 농구 경기, 맨해튼의 유소년 축구 경기도 다녀왔다. 정정인씨는 “고등학교에서도 운동선수들이 전문 트레이너들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된 것은 정말 부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미국서 전문 트레이너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정양일 김지자씨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반원초등학교와 경원중학교, 세화고등학교를 다녔다. 2001년 대학 졸업 후 캐나다 토론토에 어학연수를 온 그는 처음 1년은 캐나다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여행을 다녔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생각에 조지 브라운 칼리지에 등록, 레스토랑 매니지먼트를 전공하게 됐다. 그러던 중 체력 단련을 하던 피트니스 클럽에서 크리스라는 트레이너와 가까워지면서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을 따게 된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운동선수의 부상과 재활 훈련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공인컨디셔닝코치(CSCS) 자격증을 몇 번의 시도 끝에 취득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NATA의 국가자격시험인 공인운동선수트레이너(ATC) 면허를 따기 위해선 전공학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해야 했기 때문에 2005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의 체력트레이닝(AT) 학부에 입학했다.

“이 학과가 그 당시 인기가 너무 좋아서 한 클래스당 10~15명을 뽑는데 70명 정도가 응시했어요. 들어간 뒤에도 1학년 성적과 인터뷰를 토대로 2학년부터 AT 전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캐나다에서 4년을 살았지만 영어는 여전히 높은 벽이었고 특히 교양과목은 남들의 몇배나 힘들었다. 방과 후 운동팀과 일을 해야 하고 휠체어팀과도 매일 아침 6시에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에 수면시간을 줄이고 틈나는대로 쫑긋잠을 청해야 했다. 그는 “제가 일반 신입생들보다 10살이나 많았지만 다행히 어려 보여서 학우들과도 잘 어울리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고 웃었다.

대학 시절 여름방학마다 다른 주에 가서 자원봉사 트레이너와 체력 단련 코치 인턴십을 했다. 당시 만난 유명 체력 코치와 트레이너들과 지금도 교류하며 좋은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내친 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롱아일랜드대학원에 진학, 선수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석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는 축구와 야구 육상선수 트레이너로 홈경기는 물론, 많은 원정경기에 합류했고 다양한 주의 대학 스포츠 시설과 전문가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어디를 가나 훌륭하게 갖춰진 스포츠 시설과 과학적인 훈련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왜 미국이 스포츠 선진국인지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비단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운동하다 부상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그는 대부분의 부상은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고 불의의 부상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운동은 기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부터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는 바람에 준비 안 된 근육과 관절의 유동성이 부족해 부상이 나오거든요. 많은 코치들이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킬 때 무게를 강조하는데 그게 무리가 되어 다치므로 유동성(mobility) 안정성(stability) 교정(corrective) 운동을 병행시키는 것이 부상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선수들에게 휴식과, 영양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서 자신이 잘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선수가 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보통 트레이너의 조언을 받고 무리가 안 되는 범위에서 운동을 한다. 스포츠로 성공하는 자녀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전문 트레이너를 통해 신체 발달을 진단하고 부상 방지 훈련을 익히게 한다.

정정인씨는 “한인 2세, 3세들도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주먹구구식으로 운동하다 다치는 게 안타깝다”며 “한인 선수들은 물론, 한국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 전문 클리닉을 오픈하는 게 꿈”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올해부터 트레이너가 없는 LPGA의 한국 선수들을 위해 봉사할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 그간 익힌 전문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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