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노믹스'가 지난 30여년간 일본 경제를 짓눌러온 '강한 엔화'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일본이 1985년 '플라자 합의'이후 지속된 엔화약세를 해결하기 위해 칼을 뽑아들면서 미국과 일본, 유로존 등 주요국들이 자국의 통화가치를 끌어내리기 위해 경쟁하는 초유의 환율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엔화강세와 달러약세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단숨에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며 경기 회복의 과실을 만끽했던 미국의 전례를 따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주요국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한국은 이미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최종승자가 누구일지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

일본은 지난 1995년 '역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약세를 유도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못했다. 고정환율에 묶인 유로존은 외환정책의 융통성에 한계가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의 위상을 내줄 수 없는 처지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경기둔화가 뒤엉킨 복합 방정식을 풀어낼 '신의 한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뉴시스는 4회에 걸쳐 세계의 환율전쟁을 긴급점검했다. [편집자]


◇하반기 '환율↑, 원화↓' 예상…'한국형 토빈세' 추진 임박

지난 5년간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수면 아래서 진행돼온 글로벌 환율전쟁이 일본의 무제한 양적완화 선언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3차례에 걸쳐 양적완화를 단행했고 유럽연합(EU) 역시 무제한 국채매입 등을 통해 돈을 풀고 있다. 이러한 조치로 달러와 유로화의 가치는 하락했지만 엔화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상승했다.

가뜩이나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잃어버린 28년'을 억울해 하던 일본이 급기야 칼을 빼든 셈이다.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은행의 윤전기를 무제한 돌리겠다"며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인플레이션율 목표를 1%에서 2%로 높여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고 국채를 대량 발행해 엔화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골자다. 일본은 다음해 회계연도부터 매월 최대 13조엔의 자산을 무기한 사들일 것이라고 밝혔으며, 달러당 엔화적정선을 95엔까지로 보고있다.

일본의 이러한 통화정책은 엔저(低)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간 엔화가 고평가돼 가격경쟁력을 잃었던 것을 만회하려는 것.

이에 맞춰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 역시 지난 24일 소집된 경제재정정책자문회의에서 아베총리에게 "내년에 약 50조엔을 풀 것이라고 작년 12월 이미 밝혔다"며 "매달 상황을 점검할 것이기 때문에 자산을 더 사들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본의 '훅(hook)'에 세계는 '스텝(step)'을 고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다보스포럼)'에서 각국 경제수장들은 일본에 엔저(低)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가장 선봉에 선 국가는 독일이다. 일본의 엔저(低)가 독일의 자동차 산업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는 "일본 정부가 중앙은행의 업무를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심각한 반칙행위가 있다"고 일갈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해 전적으로 우려를 안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며 우려를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에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정담당상은 "독일은 유로존 내 고정 환율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국가"라며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닥터둠'으로 불리는 월스트리트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까지 가세해 "중앙은행들이 계속 돈을 풀 경우 과거보다 더 심각한 거품경제가 초래될 것"이라며 "양적완화에만 의지하면 재정개혁은 요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머빈 킹 영국 중앙은행 총재도 "여러 국가가 자국 통화를 낮추려 한다면 그에 따르는 국가 간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 시장 개입?, 엉덩이 들썩

우리도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일본의 무제한 양적완화를 잇따라 경계하고 나섰다. 엔저(低)로 인한 상대적 원화강세 때문에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지난 14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금융포럼' 기조연설에서 "선진국의 양적완화 조치가 거품을 키울 수 있다"며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같은 날 김 총재도 서울외신기자클럽 기조연설에서 "큰 폭의 엔화가치 하락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필요시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 외환건전성 조치 등으로 적극 대응 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일본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수출 산업의 경우 환율 직격탄을 맞아 경쟁력이 낮아졌고, 수출중소기업의 경우 환차손으로 어려워진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도 줄어 관광산업의 활기도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엔저로 인한 환율 변동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아베노믹스가 발표된 이후 원화강세가 지속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1050원선까지 떨어졌다 하루세 20원이 오르는 등 급등락이 반복되고 있다.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높은 탓에 외국인들이 '셀 코리아'에 나서고, 원화가치가 오른 탓에 단기환차익을 노리는 글로벌 단기성 투기자본(핫머니)의 공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외환당국은 '한국형 토빈세'라는 '가드'를 올렸다.

지난 30일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한 세미나에서 '한국형 토빈세'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단기 해외투기자본을 토빈세가 지향하는 취지를 살려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하는 등 다양한 외환거래 과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양적 완화가 전례에 없던 상황으로 대응조치 역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선제적 대응과 중장기적 안목에서 자본유출입 변동완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관건은 이러한 환율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는 것. 지속기간에 따라 대응책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원고(高)·엔저(低) 흐름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큰 흐름에서 엔화 약세는 맞지만 너무 가팔랐다"며 "당분간은 몇 달간 보여 온 일방향이 아니라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에는 환율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며 "원화가 상반기에 비해 약세로 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현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원화강세 흐름이 누그러질 것 같지만 기조적으로는 올해 빠질 것 같다"며 "연말 원달러 환율은 1040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 아베 총리의 경기부양책이 나오고 나서 엔달러 환율이 왔다 갔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더 심화 되려면 미국과 일본의 스프레드가 확대돼야 하는데 아직은 시기상조 인 것 같다"며 "약세 압력을 받을 수 있지만 심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완 국제금융센터 금융시장실장은 "환율갈등 종료 시점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중단 시점"이라며 "결국 주요국의 경기회복 목표 달성 시점인데 주요국들이 설정한 목표치를 단시일내 달성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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