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잠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김동민(55)씨는 지난달 가게 문을 닫았다. '밥집은 안 망한다'는 속설을 믿고 3년 전 문을 연 식당의 매출은 해마다 곤두박질했고, 지난해부터는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견디질 못했다.

김씨는 "퇴직금을 털어 차린 식당이 애물단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대기업 외식 전문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사지(死地)'에 뛰어든 것이 잘못이었다"고 힘없이 말했다.

양극화가 가속되면서 대기업집단의 몸집 부풀리기를 통한 경제력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정치권 및 사회 전반에서 "대·중소기업 상생, 골목상권 보호"라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시장논리를 앞세운 '탐욕의 손길'을 억제시키는데는 사실상 실패했다.

◇'대기업 진입= 골목상권 몰락'

골목상권의 몰락은 대기업 및 시장 지배력이 큰 중견기업들의 사업 확장 사이클과 연동돼 있다.

재벌 닷컴에 따르면 삼성, LG 등 재벌가 외에도 삼천리와 귀뚜라미 등 많은 중견기업이 외식업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천리는 계열사 에스엘엔씨(SL&C)를 통해 중식업 브랜드 '차이797'을 설립했다. 귀뚜라미그룹은 외식업체 닥터로빈을, 대성은 한식전문 계열사 '디큐브한식저잣거리'를 시작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이 자본력을 갖춘 기업 계열사와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중소기업 86%는 대기업이 동종 업종에 진출한 뒤 매출이 감소했고, 매출 감소율은 평균 3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은 대기업들의 영토확장으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하고 골목상권이 한계상황에 다다르자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자본주의 근간에 대한 도전'이라는 재계의 공박에 한걸음 물러나고, 복잡다기하게 확산된 상황에다 정치적 이해마저 얽히면서 또 한발 물러나는 등 처음의 결기는 슬그머니 수그러드는 형국이다.

◇재계 "기업 진화 결과물" 주장하지만... 상위 그룹 몸집불리기 '뚜렷'

재계는 기업들의 영역 확대에 대해 '기업 진화'의 결과물이라며 억울해 한다.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유관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선 계열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 경제 규모를 볼 때 계열사 확대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10대 그룹은 계열사 증가가 미미하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10대 그룹의 계열사 증가 현황을 보면 삼성 3개, SK 8개, LG 4개, 롯데 1개, 포스코 9개, 현대중공업 3개, 한진 5개 등 총 33개사였다. 반면 현대차 그룹은 7개사가 감소했고, GS는 3개, 한화는 2개가 줄었다.

하지만 시점을 크게 잡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기업 평균 계열사수는 지난 1997년 27.3개에서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에 18.1개까지 줄었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이 자산총액 2조원 이상으로 변동된 지난 2002년 이후 10년째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평균 계열사수는 지난해 28.3개로, 이미 이전 최고인 1997년 수준을 돌파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계열회사간 상호 출자 및 채무보증이 금지되고 금융·보험사의 의결권이 제한된다. 이사회 의결 내용 등에 대한 공시 의무도 강화되지만 대기업의 확장 욕구를 멈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법보다 사회적 감시가 필요한 시점

현재로선 대기업의 탐욕행보를 억제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눈에 띄지 않는다.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법이 정교해지고 엄정해져도 피해갈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중원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출총제가 부활되고 순환출자가 금지돼도 대기업이 이를 회피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제대로 된 규제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며 "법적 규제와 함께 사회적 감시 의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에 앞서 시민들의 평판과 감시, 공동 행동이 훨씬 효과적이란 이야기다.

정 국장은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들의 골목상권 철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 정보 공개가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이 되고 있다"며 "계열사 현황이나 지배구조 등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개해 대기업을 압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골목상권에 대한 진정성은 기업들의 탐욕을 억제시킬 또 다른 카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그동안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정치권이 선거정국을 맞아 너나없이 영세자영업자를 살리자고 나선 모습"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지속적으로 가져갈 것인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 역시 "이번 대선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 금지 등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 억제 공약이 이슈로 떠오른 것은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하기 힘들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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