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가 최근 국내공장에서 생산한 1.6ℓGDI 엔진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9일 밝혀졌다. 미국에서 연비 과장으로 문제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이를 은폐하려는 모습까지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기아차가 자사의 국제정보시스템(KGIS, www.kiatechinfo.com)에 지난 6일 직접 올린 기술 서비스 공지문에 따르면 지난 8월9일부터 10월9일 사이에 국내공장에서 생산된 1.6 GDI 엔진이 파열될 위험성을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엔진은 기아차 소하리 공장에서 북미용으로 만든 2013년형 리오(국내명 프라이드)에 얹어진 1.6ℓGDI다. 국내에도 3361대(8월 1056대, 9월 1243대, 10월 1062대)나 팔렸기 때문에 이 엔진이 장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이 엔진은 현대·기아차가 야심차게 개발한 것이어서 현재 양산 중인 준중형급(1.6ℓ)에 대거 적용되고 있다. 기아차의 설명대로 소하리 공장에서 생산한 일부 북미용 엔진에 이물질이 유입되어 생긴 문제라면 다행이지만, 엔진 설계 잘못 등 초기단계의 문제라면 사태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기아차의 경우 1.6ℓGDI 엔진이 탑재된 차량만 현재까지 확인된 게 2012년형 프라이드 해치백 및 세단, 포르테 쿱 및 해치백, 쏘울, K3 등 6종이다. 이들 차종은 국내에서 지난 8월 3422대, 9월 6418대, 10월 9290대 등 총 1만9130대가 판매됐다.

한편 문건에는 해당 기간에 생산된 리오(프라이드) 1.6ℓ GDI 차량에서 특정 RPM 구간에 이상이 있으면 엔진블록을 포함한 엔진 서브-어셈블리, 흡기 및 배기 매니폴드 개스킷, 엔진오일필터 등을 교체하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사실상 신형 엔진으로 교체하는 수준의 수리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주행 중 엔진이 파열되면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건에는 특정 방법으로 차량을 점검했을 때 딱딱거리는 비정상적인 소음이 들리거나 진동이 있을 경우 차량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를 간과하고 내버려두면 엔진이 파열되는 등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600~5000rpm 구간에서 rpm(엔진회전수)을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점검할 때 엔진에서 비정상적인 소음이나 진동이 나타나면 수리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아차 관계자는 "이 기간에 소하리 공장에서 생산된 프라이드 엔진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었다"며 "해당 차량은 미국 수출을 위해 선적을 기다리고 있거나 판매되기 전 단계다. 팔기 전에 엔진에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져 사전 점검을 하기 위해 KGIS에 게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차량은 경기도에 위치한 소하리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당시에 생산된 것은 모두 미국 수출용이기 때문에 국내에는 판매된 차량이 없다. 미국에도 팔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지문에는 "엔진을 통째로 교체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며 "문제의 차량을 수리하는 동안 차량 소유주에게 하루 45달러까지 렌트카 배상을 허락한다. 차량 렌트 기간, 이유, 렌트카 회사명, 렌트카 차종 등을 기록한 문서를 (딜러 및 서비스센터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차량이 이미 팔렸다는 말이다.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현지 기아차 딜러십 서비스센터 기술자도 뉴시스와 통화에서 "리오 2013년형 엔진 문제는 이미 내부 공지를 받아 알고 있다"며 "이미 판매된 차량 중에서도 엔진 결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리콜이 아니라서 고객들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불거지면 리콜할 수도 있다"며 "회사 생산 차원에서의 결함이 맞고, 문제 차량을 그대로 운전할 경우 엔진이 통째로 파열될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센터에서 차량점검 받기를 권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아차의 설명과 달리 이미 미국시장에 문제가 있는 차량이 판매됐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국내에서 한 대도 판매하지 않았다는 기아차 관계자의 말은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축소·은폐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평균적으로 국내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량 수송에 2개월 가량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8월에 생산된 불량 엔진이 탑재된 차량은 이미 10월부터 판매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지난 10월 한 달 동안 2623대의 프라이드가 판매됐다.

문제는 결함 엔진이 탑재된 차량의 국내 판매 가능성이다. 또 미국에서는 문제 차량의 엔진부품을 교체해주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기아차가 국내에서 판매된 차량 중에 1.6 GDI 불량엔진이 탑재된 차량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어 신뢰성마저 떨어지고 있다.

문제의 엔진을 얹은 리오가 만들어진 기간(8월9일~10월9일)은 기아차가 노조파업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물량부족을 겪던 시기다. 차량이 만들어지는 대로 판매해도 물량이 매우 부족했던 기간이라는 말이다.

앞서 미국에서 이번 현대·기아차의 연비 과장 논란에 핵심적 역할을 한 미국 소비자 감시 단체인 컨슈머 워치도그는 지난해 12월 미 환경보호청(EPA)에 현대차 아반떼의 연비 재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후 올 7월 워치도그가 소송을 제기하고, EPA가 최근 성명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연비가 부풀려졌다고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 미국법인은 "미국 정부와 저명한 자동차 전문지 3곳에서 시험한 결과, 연비 효율은 실제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연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내에서 최근 이슈가 된 K5 연료센더 문제도 기아차는 소비자들의 불평을 올 초부터 인지하고 있었지만 1년 가까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후 한국소비자원의 권고 후 리콜이 아닌 수리를 요구하는 고객에게만 수리해주는 '자발적 수리' 조치를 결정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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