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자 대책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영정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자 대책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영정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세사기 방지뿐만 아니라 전세제도 자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용산 대통령실 국무회의를 열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보고한 전세사기 매물의 부동산 경매 일정을 중단·유예하는 방안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인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구제 방법이나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찾아가는 지원 서비스 시스템을 잘 구축해달라”로 당부했다.

정부가 이처럼 전세사기 대응에 나선 이유는 최근 들어 관련 피해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7일에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성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의 피해자로, 전세계약을 맺고 거주 중이던 아파트가 지난해 6월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지난 2월 28일과 4월 14일에도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전세사기는 총 622건으로 전년(187건) 대비 3배 이상 늘어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연도별 보증사고액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금 미반환 금액은 총 1조1726억원으로 전년(5799억원)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 정부, 전세사기 대책 마련... 국회도 입법 추진

전세사기가 급증하자 정부도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미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6개월간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실시한 바 있으며, 국토부 또한 올해 2월부터 지자체와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전세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에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우리은행 및 한국부동산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임차인 대항력의 효력이 전입신고 다음날 자정에 발생하는 점을 악용한 전세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협약에 참여한 은행은 한국부동산원이 제공하는 확정일자 정보와 임차인 보증금을 확인한 뒤 대출을 실행할 방침이다.

국회 또한 관련법 정비에 나섰다. 지난달 30일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이 법안은 임대차계약 체결 시 임대인의 정보제시 의무를 신설하고 제시된 정보가 사실과 다르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임차권등기명령 결정이 임대인에게 고지되기 전에도 임차권 등기가 가능하도록 해, 임차인의 대항력・우선변제권 및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 보호를 강화했다. 

◇ 공인중개사도 전세사기 가담? 책임 강화 입법 필요

일각에서는 전세계약을 중개하는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인천 건축왕 사건의 주범 A씨는 공인중개사를 다수 고용해 조직적으로 범죄행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특별단속을 통해 적발한 전세사기 중에서도 공인중개사·감정평가사 등이 위법행위에 가담한 사례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월 발간한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공인중개사 책임 강화 입법의 모색’ 보고서에서 “전세사기를 방지하기 위한 기존 대책들을 보면 주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 해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며 “대부분의 임대차계약이 공인중개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중개대상물에 관해 공인중개사가 확인·설명해야 하는 사항은 소유권·전세권·저당권·지상권·임차권 및 거래예정금액·중개보수 등으로, 임대인의 미납 국세나 주변 부동산 시세는 설명 대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입법조사처는 “부동산중개인의 미납국세 등 설명의무를 규정하면서, 위반 시 공인중개사를 처벌하거나 손해배상의무 규정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전세제도 위험성, 대출 보증 비율 낮춰야...

전세제도 자체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전세 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약은 ▲거래 상대방 위험에 대한 보완 장치가 미비하고 ▲대출계약과 매우 흡사한데도, 과잉 대출에 대한 규제 적용이 어려우며 ▲임대인에게 유동성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갭투자를 쉽게 하여 주택가격 및 거래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이처럼 전세계약이 거시경제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이는 가계부채의 과도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전세계약의 위험성을 규제하려 해도 오랜 관행이 작용하는 사적 거래인 만큼, 정부가 특정한 계약방식을 강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 연구위원은 “현재 전세 계약이 만연한 와중에 임대인과 임차인의 사정은 매우 다양할 것인데, 정책기관은 충분히 그 사정을 파악할 수도 없다”며 “전세 계약 자체에 대한 섣부른 정책 개입은 큰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에 반해 전세자금대출 보증에 관한 조정은 공적 기관이 완급을 조절하며 직접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므로 쉽게 접근 가능한 방식”이라며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이 줄어든다면, 전세보증금 총액에 비해 대출로 조달할 수 있는 규모가 작아질 것이며, 이는 다시 100% 보증금만 있는 전세 계약이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대체하는 보증부월세 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크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벌어진 전세사기 피해 사례와 관련해 “이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 역시 청년 미래 세대”라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정부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전세사기로 인한 또다른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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