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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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가상자산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와 관련된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식·부동산과 마찬가지로 공직자가 보유한 가상자산을 재산공개 범위에 포함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7일 ‘가상자산과 관련한 공직 부패의 우려와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최근 가상자산 거래가 활성화되고 가상자산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공직자에게 가상자산과 관련한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 다수의 공직자가 퇴직 후 가상자산 업계로 진출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가상자산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5급 공무원이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으로 이직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법무부 장관정책보좌관실 소속 검사가 마찬가지로 가상화폐 거래소로 이직하려다가 이해충돌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현행법은 특정 주식·부동산 등을 보유한 공직자가 관련 직무를 맡거나, 내부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재산상 이해충돌을 방지하고 있다. 반면, 가상자산의 경우 유관기관으로 분류되는 16개 기관들이 자체 행동강령(훈령)을 통해서만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고 있는 상태다. 검찰청의 경우 자체 행동강령에 ‘정보 이용 거래금지’ 규정은 포함됐지만, ‘직무 배제’ 규정은 없어 현재 개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법률이 아니라 개별 기관의 훈령을 통해 규정된 가상자산 규제의 효력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공직자의 범위가 소속기관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의 공직윤리 법제는 주식, 부동산의 보유와 관련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를 하위법령이 아닌 법률에서 직접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 전부에 대해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며 “가상자산 보유에 따른 직무 배제 규정은 현재 일부 기관의 행동강령(훈령)에 규정되어 있어 적용범위가 해당 기관의 소속 공직자로 제한된다. 이 경우 행동강령에 직무 배제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기관의 소속 공직자들은 가상 자산 관련 이해충돌의 가능성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개별 기관의 훈령에는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일부 기관은 법률상 개념인 ‘가상자산’ 대신 ‘가상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NFT(대체불가토큰)는 규정의 적용 대상인 ‘가상자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공직자가 이를 자유롭게 보유할 수 있는지, 아니면 관련 규정에 따라 보유 사실을 신고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이처럼 규정의 적용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면 규정 위반에 대한 사후적 제재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공직자가 보유한 가상자산은 주식이나 부동산과 달리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된 재산등록 및 공개 대상 재산 목록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설령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 

 

가상자산 관련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규정 현황. 자료=국회입법조사처
가상자산 관련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규정 현황. 자료=국회입법조사처

 

반면 미국의 경우 공직자가 보유한 가상자산도 재산등록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 공직자 윤리를 소관하는 정부윤리국(OGE)은 공직자가 등록 기간 말 기준 1000달러 이상의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을 보유하거나, 등록 기간 동안 이를 통해 200달러 이상의 소득을 얻으면 이를 보고하도록 했다. 게다가 보유한 디지털자산의 종류는 물론, 취득 경로에 있는 거래소·플랫폼 등도 함께 보고해야 한다. 거래소·플랫폼과 디지털자산의 가치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 

또한, OGE는 공직자들이 보유 가상자산 보고 의무를 혼동하지 않도록 재산등록 대상이 되는 디지털자산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지난 7월에는 NFT가 등록 대상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상세한 기준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공직자의 가상자산 관련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기관별 행동강령이 아닌 법률에 가상자산 관련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신설하고 ▲공직윤리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가상자산의 범위를 명확히 하며 ▲공직자의 재산등록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형진 입법조사관은 “가상자산을 이용한 각종 부패 사례가 이미 여러 건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상자산에 대한 부패방지 제도 확립은 지금도 이른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최근 가상자산 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입법적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것에 발맞추어, 공직윤리 분야에서도 가상자산과 관련한 윤리 규범이 조속히 확립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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