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사진-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이코리아]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가 밝힌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의 입장이 확연히 달라 난항이 예상된다.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에 따라 7월에 만들어진 단체로 법대, 경제·경영, 보건학 교수들로 이루어진 노동시장 개혁 전문가 논의기구이다.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가 내놓은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근로 시간 및 임금체계의 개편이다. 근로 시간과 관련해 권고안은 주 단위로 규제가 이뤄지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과 분기, 반기, 연 단위로 다양하게 하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원칙적으로 일주일간 노동시간이 40시간을 넘을 수 없지만,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1주일에 최대 12시간 연장 노동이 가능하다. 연구회는 장시간 연속 노동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80%(250시간), 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70%(440시간) 수준으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연구회는 건강권 보호를 위해 노동자가 일을 마친 뒤 다음 일하는 날까지는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을 보장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연속휴식 시간을 뺀 13시간에서 근로기준법상 4시간마다 30분씩 줘야 하는 휴게시간을 고려하면, 주휴일 없이는 최대 80.5시간, 주휴일이 있을 경우에는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또한 연구회는 임금체계 개편 방안은 연공 등을 토대로 정해지는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그 방법으로 직무‧성과평가 기준, 절차 등에 관한 컨설팅을 확대하고, 직무평가 도구를 지속해서 개발‧보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연구회는 정부에 고령 근로자의 계속 고용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임금, 직무 등을 조정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는 연구회의 권고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자신의 SNS에서 “노동시장을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라며 “권고문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임금과 근로 시간 제도는 이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라고 적었다.

노동부는 근로 시간 단위 기간 확대와 임금체계 개편은 즉각 추진하고 추가 과제는 사회적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 내년 초께 관련 추진 일정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근로 시간 관련 내용 대부분은 근로기준법 개정 사안이다. 

노동계는 이번 권고안에 반발하고 있다. 

민변 노동위원회는 성명을 내어 “권고문의 내용은 이미 고용노동부의 ‘추진 방향’에서 예고된 것이었다.”라며 “이번 권고문은 사용자에게 노동시간 활용의 자유를, 노동자에게 건강권 침해의 피해를 야기하는 매우 위험한 입장문이다.”라고 규탄했다. 

한국노총 역시 “이번 권고안이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권보다는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 재량권을 확대해 유연 장시간 노동체제로 귀결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다.”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의료계 역시 과로로 인한 산업재해가 늘어날까 염려한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노동부의 과로사 인정기준이 60시간인데, 발표한 거 보면 주당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이런 얘기가 지금 나오면 이게 뭔가 지금 안 맞는 거다.”라며 “현재도 과로로 산업재해가 인정되는 건수만 1년에 1천 건이 넘는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도 매우 뜨겁다. 

[사진-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에 대한 설문조사, 제공-옥소폴리틱스]
[사진-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에 대한 설문조사, 제공-옥소폴리틱스]

20만명 회원을 보유한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의 권고안’에 대해 질문했다. 주 52시간제에서 주 69시간제 로의 근로시간의 변화에 대해서 응답자 491명 중 62.1%가 반대, 중립은 10%, 찬성은 27.9%로 대다수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왔다.

근로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입장으로는 “직종별 차이점은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만, 안그래도 일하다 죽는 일이 OECD 1, 2위를 다투고 선진국의 예상 범위를 한참 벗어난 나라인데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걱정부터 나온다.”라며 과로로 인한 산업재해를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다. 

11시간 연속 휴식에 대한 의견으로 “11시간 휴식? 22시 퇴근 9시 출근이면 딱 11시간인데 설마 그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치는건 아니겠죠?”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비판했다.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는 철폐해야 한다는 찬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업장별로 안전한 근로시간은 명백히 다르다. 사무실에서의 8시간과 노가다에서의 8시간이 같나요? 작업감독관을 두고 최대근로시간 심사를 받게 하든지 해야지 천편일률적인 규제는 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에 대해선 응답자 492명 중 찬성 40.4%, 중립 24.8%, 반대 34.8%로 나타났다.

비정상의 정상화에 가깝다며 찬성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 이건 당연한 접근인데.. 뚜렷한 성과를 보이는 사람에게 많이 주는게 맞죠. 악용의 여지도 있어보이지만 원론적으로 보나, 생산성 면에서 보다 맞다.”고 말한다.

중립의 의사를 표시한 누리꾼은 “이론상은 맞는데, 이러면 회사가 어떤 기준으로 내 월급을 주는지 노동자에게 공개해줘야겠네요. 더욱 걱정인 점은 이게 회사의 삭감, 동결로 악용될까 하는 점”이라며 우려의 의사를 표했다.

“장단이 있지만, 기관장, 총수들도 성과제 할거냐고.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좇고, 과정의 윤리는 내버려둔 채 곳곳에서 그들만의 리그 형성”이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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