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카페에서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이를 오독한 누리꾼에게 성의 없는 사과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한 카페에서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이를 오독한 누리꾼에게 성의 없는 사과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이코리아] 최근 ‘심심한 사과’ 논란을 계기로 한국인의 문해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한 카페가 트위터에 행사 일정 지연에 대한 사과문을 올리며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는 표현을 사용하자,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이 성의 없는 사과라며 비난을 퍼부은 것.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심심하다’의 의미는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등으로 나뉘는데, 사과문을 읽은 누리꾼들이 해당 표현의 뜻을 비교적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후자의 의미로 오해해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이 같은 논란은 과거에도 일어난 바 있다. 지난 2020년에는 광복절 다음 월요일인 8월 1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는데, 관련 기사를 본 독자 중 일부가 ‘3일’ 연휴인데 외 기사 제목이 “사흘 연휴”냐며 비난하는 댓글을 단 것. 이 때문에 한동안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 ‘사흘’이 1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금일’ 시험이라는 학교 공지를 보고 이를 ‘금요일’ 시험으로 오해한 학생의 사연이 논란이 된 바 있다.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 성인들의 문해력은 과거보다 향상됐으며 나이가 어릴 수록 문해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국가평생교육진흥원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 성인들의 문해력은 과거보다 향상됐으며 나이가 어릴 수록 문해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국가평생교육진흥원

◇ 한국 문해력 논란, 문제는 ‘청년층’ 아닌 ‘고령층’

‘심심한 사과’, ‘사흘’, ‘금일’ 등 연이은 오독 논란이 벌어지면서, 한국인의 문해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과 영상 매체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과거와 달리 독서량이 부족해 상식 수준의 단어나 쉽게 쓰인 문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한국인, 특히 젊은 세대의 문해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의 몇몇 사례만으로 전반적인 문해력 수준을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이코리아는 국내외에서 시행된 문해력 관련 조사 결과를 참고했다.

우선 국내에서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 2014년부터 3년 주기로 ‘성인문해능력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총 43개 문항으로 구성된 이 조사는 정답률에 따라 수준1(초등학교 1~2학년), 수준2(초등학교 3~6학년), 수준3(중학교 1~3학년), 수준4(중학 학력 이상 수준) 이상으로 문해력 수준을 나눈다. 가장 최근 발표된 3차 조사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약 3개월간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만429명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3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성인 중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어려운 비문해 인구(수준1)은 4.5%(약 20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차 조사(2017년, 7.2% 대비 2.7%포인트, 1차 조사(2014년 6.4%) 대비 1.9%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반면 일상생활에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4 이상은 1차 71.5%, 2차 77.6%, 3차 79.8%로 매번 비중이 늘어났다. 한국인의 문해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주장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의 문해력은 어떨까? ‘심심한 사과’ 논란이 불러온 청년층에 대한 우려와는 달리 ‘성인문해능력조사’는 어릴수록 문해력이 높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실제 18~29세 성인 중 비문해 인구(수준1)의 비중은 겨우 0.2%에 불과하다. 수준1~수준3의 비중도 4.5%로 6년 만에 1차 조사(12.9%)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30대 또한 수준1은 0.1%, 수준1~수준3은 4.7%로 18~29세와 비슷하다. 반면 40대의 경우 수준1~수준3 비중이 8.5%였으며, 50대 17.2%, 60대 35.6%, 70대 58.9%, 80대 이상 77.1%로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문해력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80대 이상의 경우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인 수준1 비중이 절반(49.6%)에 가까웠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인의 문해력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OECD가 주관하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의 가장 최근 결과(2013)에 따르면, 16~65세 한국인의 언어능력은 273점으로 OECD 평균(266점)보다 높았다. 또한, 성인문해능력조사와 마찬가지로 PIAAC에서도 젊은 세대일수록 문해력이 높다는 특징이 발견됐다. 실제 16~24세의 언어능력 순위에서 한국은 일본·핀란드·네덜란드에 이어 4위를 차지했으며, 25~34세 그룹도 5위에 올랐다. 반면,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순위가 낮아져 55~65세는 조사대상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를 걱정하기 보다는, 고령층의 문해력 향상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 국내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읽기 영역의 성취도가 매우 저조한 학생들의 비중(2수준 미만)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한국교육과정평가원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 국내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읽기 영역의 성취도가 매우 저조한 학생들의 비중(2수준 미만)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한국교육과정평가원

◇ 韓 청소년 읽기 능력 탁월... 디지털 문해력 부족 시각도

청소년으로 조사대상을 한정해도 한국의 문해력은 국제사회에 뒤처지지 않는다. 만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중 가장 최근(2018년) 결과를 보면, 한국의 읽기 영역 점수는 514점(5위)으로 OECD 평균(487점)보다 높았다. 

청소년들의 독서량이 부족해 문해력이 저하된다는 주장도 지지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청소년은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이 지난 2020년 9월부터 2021년 8일까지 읽은 책(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은 총 34.4권으로 성인(4.5권)보다 8배나 많았다.

다만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게 만드는 조사 결과도 없지 않다. 실제 PISA에서 한국 청소년들이 기록한 514점은 충분히 높은 점수이지만, 2006년(556점, 1위) 이후 점차 점수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상위 성취자인 5수준 이상 학생 비율은 13% 내외로 비슷하게 유지되는 반면, 하위 성취자인 2수준 미만 학생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청소년들의 문해력 평균은 유지되고 있는 반면, 문해력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바일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오히려 디지털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OECD는 지난해 3월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 문해력 개발하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는 2018년 PISA 결과 중 디지털 문해력 관련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만 15세 청소년들은 제시된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국 청소년의 식별률은 25.6%로 OECD 평균(47.4%)와 큰 격차를 보이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식별률이 30% 이하인 국가는 한국과 슬로바키아, 콜롬비아 등 3개국뿐이다. 피싱메일을 판별하는 능력도 한국은 멕시코, 브라질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이는 국내 교육과정이 청소년의 문해력 향상을 위해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 학생 중 학교에서 정보의 편향성을 판단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학생의 비율은 49.1%로 조사 대상인 OECD 38개국 중 24위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피싱메일을 판별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비율도 한국은 34.7%로 OECD 평균(41.2%)보다 낮았다. 

긴 호흡의 글보다 짧은 호흡의 소셜미디어나 영상매체를 선호하는 청소년들의 특성이 문해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근거가 있다. OECD에 따르면, 한국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읽는 텍스트의 길이는 대체로 10쪽 미만이었다. 반면 덴마크·영국·캐나다·핀란드 등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 순위가 높은 국가의 경우, 학교에서 100쪽 이상의 텍스트를 읽히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도 학생들의 연간 독서량(33.4권)은 2019년(41권) 대비 7권가량 감소했다.

[검증결과] 대체로 사실 아님. 국내외 문해력 관련 조사결과 한국인의 문해력이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거나,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더 심각하다는 우려는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저하되고 있으며, 특히 디지털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OECD의 조사 결과는 최근 불거진 논란과 관련된 우려에 부합한다. 

※ 참고자료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 ‘성인문해능력조사’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OECD,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 문해력 개발하기’

문화체육관광부,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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