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인헤븐즈프레스 트위터
= 나인헤븐즈프레스 트위터

[이코리아] 전 세계 민족들에게 전승되는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는 과거에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현대에는 여러 창작자의 손을 거쳐 각 국가의 독창적인 문화를 소개하는 매력적인 IP의 소재로 재탄생하고 있다.

북유럽, 이집트, 그리스, 일본 등 여러 민족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한국의 신화는 아직 흥행성이나 인지도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 반면에 한류열풍과 시너지를 일으켜 신선하고 새로운 IP로 흥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최근 미국의 한 창작자 그룹이 새로운 한국신화 판타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계 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모인 '나인 헤븐즈 프레스 (Nine Heavens Press)'팀은 올해 6월 트위터를 통해 한국신화 기반의 TRPG(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 를 제작중이라고 공지했다.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한국신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소문이 퍼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언다잉 커럽션 (Undying Corruption)'이라는 제목의 이 세계관은 '단국'이라는 조선과 비슷한 모습의 세계에 한국신화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관이다.

이코리아는 나인 헤븐즈 프레스 팀의 설립자 김민기씨와 3일 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나인헤븐즈프레스 팀. 소개문의 태극기가 눈에 띈다. = 트위터 캡쳐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나인헤븐즈프레스 팀. 소개문의 태극기가 눈에 띈다. = 트위터 캡쳐

Q. 나인 헤븐즈 프레스 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김민기이고, 나인 헤븐즈 프레스의 설립자이자 수석작가입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트위터와 아트스테이션(ArtStation)에서 “한국적 판타지 세계”에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한국계 미국인과 한국인 작가를 찾았습니다. 작가 중 꽤 많은 분들이 캘리포니아에 사셔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다른 분들은 미국의 다른 지역이나 괌, 한국에 계십니다. 이렇게 모인 팀원들이 함께 한국의 문화를 다시 접하고, 이를 팀 내의 다른 문화권에서 온 작가분들께도 공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Q. 먼저 TRPG 소개부터  해주실까요.  TRPG는 어떤 게임인가요.

TRPG는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Tabletop Role-Playing Game)의 줄임말이고요, “펜과 종이 게임”이라고도 합니다. 아날로그 형태의 롤플레잉 게임으로, 참여자가 직접 게임의 맵을 그리고, 캐릭터의 능력치를 종이에 적고, 캐릭터가 행동할 때 주사위를 굴리는 형식입니다. 주로 진행자와 심판 역할을 하는 마스터(Game Master, GM)가 있고, 3명 이상 정도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캐릭터로 참여해서 시나리오의 난관을 헤쳐 나갑니다. 매우 캐릭터와 스토리 중심인 놀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판타지 장르인 던전앤드래곤 5판과 패스파인더를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콜오브크툴루(CoC, Call of Cthulhu)가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배경 컨셉아트 = chagok_yun
배경 컨셉아트 = chagok_yun

Q. ‘언다잉 커럽션’의 세계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언다잉 커럽션의 세계관은 고조선의 창건자인 단군의 이름을 딴 “단국”이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TRPG 판타지 세계관인 ‘에버론(Eberron)’이나 ‘골라리온(Golarion)’에 추가할 수 있는 세계관입니다.

한국의 건국 신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이고, 환웅이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정입니다. 환웅은 아버지인 환인에게 지상에서 천상의 대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이것이 미래에 일어날 여러 사건의 도화선이 됩니다. 단국의 역사는 건국 자체는 한국의 역사와 아주 유사하지만, 여러 신과 혼령이 개입해 역사에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발생한 여러 복잡한 문제를 신들은 무당에게 해결할 것을 명했고, 세상의 영적 에너지가 강해질수록 더욱 날뛰고 있는 존재인 귀신과 악령 등이 그 문제 중 하나입니다.

설정상 단국의 현재 시점은 조선과 비슷한 시대이고요, 성리학을 따르는 양반 대신에 점성술을 사용하는 위저드와 바드가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단국에는 또한 물질세계와 영적세계 사이를 중재하는 무당에 대한 핍박이 이어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는데요, 무당은 마법적 힘을 다룰 수 있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도깨비 = Jenny Park/asunnydisposish
도깨비 = Jenny Park/asunnydisposish

Q. 한국신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한국신화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신 건가요?

이야기에서 평범한 사람도 강고한 원칙과 신념이 있다면 위대해질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한국신화가 좋습니다. 저승으로 떠나는 바리공주의 여정은 사랑에서 시작되잖아요,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까지 닿는 깊은 사랑에서요. 제주도 신화의 자청비는 남편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총명함을 남성 중심인 세상에 증명하고 신이 되는 게, 어떻게 보면 로맨스 드라마 속의 이야기 같았어요. 다른 이야기에서는 승려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내려오자 날뛰었던 불가사리 설화처럼, 사람들의 불만과 공포가 마법을 낳기도 하죠. 이러한 공포, 감정, 희망과 욕망을 무당이 받아들여서 점과 굿의 형태로 표현하고요. 우리나라의 무교(巫敎)에는 3000년의 역사가 있고 그 신앙이 우리 신화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니까요. 한국신화에 담긴, 사랑과 정의를 향한 지극히 사람다운 욕망에 끌렸습니다.

Q. 자료 탐색은 어떻게 하셨나요? 참고가 된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가 따로 있었는지, 혹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영어로 된 자료를 최대한 조사했는데요, 아쉽게도 자료가 매우 부족했어요. 초기에 읽었던 서적으로는 임방(任埅)의 민담, 『An Illustrated Guide to Korean Mythology』 (최원오 저), 『왕이라는 유산』 (김자현 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저) 및 한국의 무교에 관한 인류학 서적 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집중한 데에는 조사할 때 그 시대를 더 자세하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보다 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현직 무당 등 한국 역사와 문화에 더 박식한 전문가들을 모셔서 제가 조사한 정보가 정확한지 검수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묘시월드』 (MeoshiWorld)와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 저) 또한 제가 본 적도 없었던 한국 민화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존재를 조사하는 시작점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웅 = Kem/Aethermancy
환웅 = Kem/Aethermancy

Q. 여러 캐릭터를 SNS를 통해 공개하고 계시는데, 특별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특히 환웅 디자인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희 팀이 한국 문화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적절한 부분에서는 창작적인 해석을 더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의 독자들에게 따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저와 저희 팀원들은 두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최선을 다해 한국 너머의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한국의 문화와 신화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영어로 쓰인 저희 이야기를 한국으로 들여오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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