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리아】김봉수 기자 =  저가왕국, 짝퉁대륙으로 치부했던 오명을 믿고 안심하는 사이 중국기업들이 세계1위 자리를 하나 둘 차지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미래의 위협이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줄은 몰랐다.

10년 뒤, 20년 뒤에나 다가올 것 처럼 보였던 차이나 리스크의 칼끝은 이미 한국의 코앞까지 당겨져 있다. 중국의 맹추격은 이제 특정 분야를 한정짓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전방위로 확산 중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최대 시장으로 변신한 중국은 막대한 내수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자금력을 무기삼아 기술과 브랜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또 다시 탈바꿈하는 중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세계 1위 브랜드들이 매물로 나오기 무섭게 중국자본에 넘어가고, 국내에서는 부동산을 넘어 패션과 화장품, IT 등 산업계 전반에서 중국발(發) 인수합병(M&A)이 진행중이다.

갈수록 좁혀지는 기술격차, 대안을 찾기 힘든 가격경쟁력, 장성만큼 높이 둘러진 무역장벽 등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 내수시장에서 고전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차이나 리스크' 기획시리즈를 통해 예상보다 빠른 중국의 약진이 우리 경제와 기업에 던지는 과제와 이를 극복할 대안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국내 토종 유아용품 전문업체 '아가방앤컴퍼니'는 최근 중국 의류업체인 랑시그룹의 한국 자회사인 라임패션코리아에 매각됐다. 국내 최초의 유아 브랜드로 출발, '국민 유아복'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저출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넘어갔다.

랑시그룹은 한국 1위 기업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내세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유아용품 시장을 시작으로 빠르게 관련 시장을 점령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계 자본이 부동산을 넘어 패션, 화장품, IT 국내 산업계에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누계기준 대중국 투자유치금액은 57억18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 진출한 중국 기업(법인 및 개인사업자) 수는 2002개에 달한다.

지난 5년간 중국기업의 한국 투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를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특히 올 상반기 중국 자본의 국내 투자는 전년 동기 394% 증가한 7억7600만 달러를 기록해 작년 연간 투자유치액의 1.6배를 기록했다.

중국계 자본의 한국 투자 업종이 다변화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지금까지 중국 자본의 한국 투자가 제주도 부동산 개발업에 치중된 것이 사실. 이는 중국 관광객들의 제주도 방문 증가와 제주도의 부동산 투자이민제 실시에 따른 특수를 누리기 위한 중국 기업들의 제주도 투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0년 부동산 투자이민제 도입 이후 5년간 제주도 내 중국인이 소유한 토지 면적은 300배 가까이 급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기업의 한국 투자 업종의 다변화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며 IT·소프트웨어(SW), 기계, 부품소재, 식품, 바이오, 패션 부문에도 중국계 자본의 유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오린아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10여년 전 드라마 대장금의 유행했을 당시 산업적인 변화는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 정도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한국 패션 및 소비재업체, 즉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는 기업에 차이나머니가 직접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방영 이후 중국 자본이 최근 2~3년간 국내 의류 업체 5개 이상을 인수했다. 한류가 자국 산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자 발빠른 중국 기업들이 한류의 원조인 국내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는 것.

2012년 11월 안나실업이 인터크루를 인수한데 이어, 같은해 12월에는 디샹그룹이 BNX, 탱커스, 카이아크만 등의 의류브랜드를 보유한 아비스타를 품에 안았다. 지난해 1월에는 리앤펑이 서양네트웍스(블루독, 밍크뮤)를 인수한데 이어, 이번에 랑시그룹이 아가방앤컴퍼니를 인수했다. 홍콩 사모펀드는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에 투자를 단행했다.

중국계 자본은 화장품 업계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코리아나와 에이블씨앤씨 등을 잠재매물로 언급하고 있으며, 네이처리퍼블릭과 한국콜마 등도 경영권을 제외한 투자유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글로벌 ICT 시장에서도 M&A, 지분투자 등을 통해 국내 시장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중국 시장의 성장과 함께 자본을 축적한 중국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에 투자하는 것.

중국 ICT분야의 M&A 중에서도 인터넷 업종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09년 6500만 달러에 그친 중국 인터넷 업종 M&A 규모는 지난해 4억3500만달러로 6배 넘게 증가했다. 올 7월 기준으로는 7억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놀라운 급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손위창 현대증권 연구원은 "이는 중국 산업 고도화에 따른 인프라 구축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자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한 장점을 살려 인터넷 및 전자상거래의 발전이 나타나며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공격적인 M&A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은 중국 게임 및 포털업체 텐센트다.

텐센트는 2012년 720억원을 투자해 카카오 지분 10%를 인수했다. 올 3월에는 CJ그룹 계열 CJ게임즈에 5300억원을 투자해 3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또 캡스톤파트너스에 700억원을 출자해 아이덴티티게임즈 등 중소 게임회사에 15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텐센트는 국내 시장에서 검증된 성공 모델에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와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등을 중국에 유통해 1위 게임 기업으로 올라섰다.

백승재 벤처캐피털 씨엘인베스트먼트 부장은 "중국 기업은 한국에서 성공한 게임은 대부분 중국에서도 통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게임사에 대한 투자 확대는 중국 내 모바일 게임 시장 성장과 함께 다양한 게임을 선점해 공급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중국의 알리바바 역시 한국 게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알리바바는 올 4월 텐센트코리아에서 모바일 게임사업을 총괄한 황매영 지사장을 한국 게임부문 지사장으로 스카우트했다. 알리바바는 이미 '아이 러브 커피'로 유명한 파티게임즈, '활', '블레이드' 등을 내놓은 '4:33' 등과 제휴를 맺은 상태다.

중국계 자본은 한국 금융업까지 진출할 태세다. 대만 위안다(元大) 증권이 동양증권을 인수했고, 중국의 대기업 푸싱그룹은 LIG손해보험 인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자금의 국내 유입 속도는 앞으로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한국에 투자된 차이나머니는 270억 달러로 전체 차이나머니 중에서 1.1~2.4%로 추정된다"며 "차이나머니는 중국 외환보유고 증가, 중국 성장률 하락, 임금상승 등 구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한국 투자 비중도 크지 않아 향후 차이나머니의 국내 유입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과잉투자 문제에 부딪힌 소재·산업재 산업 대신 첨단분야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의 개혁을 진행 중"이라며 "이에 따라 중국의 7대 전략적 신흥 산업 중 신에너지 자동차, 환경보호 기술 등은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중국 자금은 이들 업종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중국계 자본의 유입이 침체된 국내 시장을 되살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과 동시에 국내 기술 유출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 등 IT 업종과 패션 및 소비재업체, 즉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는 기업에 차이나머니가 직접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오린아 연구원은 "중국은 자체 브랜드와 상품 기획력이 매우 부족한데 따라서 수준 낮은 디자인과 상품 기획력을 보완하기 위해 국내 기업 인수를 통해 이를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김영환 연구원은 "대체로 중국기업의 국내기업 M&A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인식이 강하다"며 "하지만 과거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 등, 중국 자본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은 아니었던 만큼 역대 M&A 사례를 통해 중국 자본과 한국 기업의 결합이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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