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 내 공동배송센터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 내 공동배송센터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의 ‘규제개혁 1호’로 꼽혔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공약이 논란만 남기고 흐지부지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규제를 풀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면서다. 정부는 국민 여론과 당사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했지만, 대안 없이 갈등만 부추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26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5일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 영업 규제에 대해 “당장 제도를 변경하는 것 없이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소상공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25일 오전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에서 주재한 제6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러한 취지로 발언했다고 최상목 경제수석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 마무리 발언에서도 “전통시장과 동네 골목, 마을 상권에서 일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분들을 위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디지털 전환을 돕고 매출이 늘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강인선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밝혔다.

월 2회 의무 휴업 등 현행 영업제한 규제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취지인데, 규제 개선 논의가 사실상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여론 악화로 인해 대통령실이 한발 물러선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제안을 내세워 규제혁파를 추진하려 했으나 소상공인 단체·노동계 등 이해관계자 설득에 실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 5일부터 18일까지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 개선’ 온라인 토론회에 3073명이 참여했다. 폐지 반대에 2688명(87.5%), 찬성에 338명(11%)이 투표했다. 

국무조정실은 이 결과를 토대로 지난 4일 1차 규제심판회의를 열었다. 규제심판회의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규제 혁신을 위해 새로 마련한 제도다. 1호 안건이 대형마트 영업 규제다. 이어 24일에는 의무휴업 폐지와 관련해 대형마트·소상공인 등 이해 관계자들과 관계 부처 의견을 청취하는 2차 규제심판회의를 열 예정이었는데, 잠정 연기됐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규제해 전통시장 이용을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2013년에는 규제가 확대돼 월 2회 휴일 의무휴업이 강제됐다. 

골목상권 침해를 막고 전통시장과 상생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영업규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대형마트는 시장 구도가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바뀌어 역차별을 받고, 소비자 불편만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대형마트 3사 점포 수는 지난 2019년 406곳에서 2021년 384곳으로 점포수가 줄었고, 이들이 운영하는 기업형슈퍼마켓도 1215곳에서 1103곳으로 쪼그라들었다. 업계에서는 2010년대 초반까지 높은 성장세를 이어온 마트업계가 주춤하게 된 계기로 월 2회 의무 휴업 규제를 꼽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를 규제로 반사 이익을 얻은 건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 쇼핑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상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의무 휴업해야 하는 반면, 쿠팡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은 온라인 주문과 배송에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대형 마트 측은 의무휴업 폐지 또는 의무휴업일이나 영업 제한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수준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가로막는 영업제한 조항 등 44건을 경쟁제한 규제로 선정해 개선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마트 점포를 기반으로 한 10년 전의 규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공정한 경쟁 환경을 구축하고 소상공인 경쟁력을 강화해가는 방향으로 유통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전통시장 내 소상공인의 어려운 문제는 이해하지만 규제로만 풀 수는 없다. 규제라는 것도 수명이 있다”며 “소상공인의 자생력을 갖추라고 그간 마트 규제를 한시적으로 한 것인데, 이 정도면 시효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를 통한 비용과 이익이 있는데 이제 규제에 따른 이익도 작아졌다. 온라인이 커지면서 규제효과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당초 취지는 못 살린 채 대형마트 매출 감소, 중소협력업체 피해, 소비자 불편 등 부작용만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은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규제심판회의로 넘어갔다. 앞서 국무조정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등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6개 규제를 심판회의 안건으로 지정했다. 

24일 규제혁신전략회의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8월 4일에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 관련해 첫 규제심판회의를 열렸는데 이해당사자 간에 조금 더 숙의 기간이 필요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숙의한 다음에 후속 논의를 진행하기로 결정됐다”면서 “대형유통사업자들하고도 의견들을 듣고 있어서 서로 접점을 찾아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정도 교집합이 생기게 되면 다시 한 번 규제심판회의를 개최해서 논의를 진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마트산업노조는 정부를 향해 “졸속 처리에 사과하라”며 '일요일 의무휴업 통일' 등을 위한 투쟁을 예고하고 나서는 등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들은 ‘윤석열 정부 대형마트 주말 의무휴업 폐지 저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발족했다. 공동행동은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중소상공인 생존권과 마트노동자 건강권 보호의 상징과 같은 제도”라며 “대기업의 민원 해결사를 자청한 윤석열 정부가 당사자와의 대화나 의견수렴도 없이 역린을 건드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 규제완화의 상징인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반드시 저지하겠다”며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외면한 정부와 여당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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