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용 와이퍼스 닦장 "지구를 닦는 시간은 나를 닦는 시간"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들고 뛰는, 플로깅 중인 와이퍼스 운영자 황승용 씨. 사진=와이퍼스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들고 뛰는, 플로깅 중인 와이퍼스 운영자 황승용 씨. 사진=와이퍼스

[이코리아] “직장을 다니면서 용돈벌이나 할 요량으로 지난 2019년에 환경에너지 수필공모전에 응모했다. 수상자에게는 유럽 방문권과 상금 100만원을 준다고 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위해 환경 정보를 찾다가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낀 채 피를 흘리는 바다거북 영상을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영상에서 울부짖는 바다거북에게서 빨대를 빼내는 데는 무려 8분이 넘게 걸렸다고. 황승용 씨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졌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다음날 바로 집 앞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황승용 씨는 지구 닦는 사람들 ‘와이퍼스(Wiperth)’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는 30대 MZ세대 직장인이다. 처음엔 홀로 일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쓰레기를 주우며 달리기를 했다. 그러다 플로깅은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창피해서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4명이서 카카오톡에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4명이 석촌호수에 모여 쓰레기를 주은 게 와이퍼스의 시작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와이퍼스는 어느 새 600명 정도가 모여 국내 2위의 커뮤니티가 됐다. 

와이퍼스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모여 쓰레기를 줍는다. 와이퍼스 앱에도 자발적인 모집 공지가 있다. 앱에 들어가 보면 ‘여의도한강공원 22일 오전 9시 15명’, ‘하귀포구 21일 오후 1시 30분 3명’ 등이 올라와 있는 걸 볼 수 있다. 황승용 씨는 와이퍼스 내에서는 ‘닦장’으로 불린다. 닦장은 지구 ‘닦’는 사람들의 ‘장’이라는 뜻. 멤버들은 '닦원'으로 불린다.

다음은 <이코리아>가  '지구를 닦는 시간이 곧 나를 닦는 시간이 되었다'는 황승용 와이퍼스 닦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Q. 환경 보호를 위한 실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별히 플로깅(plogging,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 줍기)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일상에서 누구든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진입장벽이 낮다. 또 플로깅을 하면서 직접 쓰레기 문제를 직면해봐야 제로웨이스트나 다른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다. 

Q. 와이퍼스 모임이 정해지면 보통 몇 명 정도 참석하는지. 100여명 이상 늘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와이퍼스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00명 이상 늘 참석하지는 않는다. 소규모에서 혹은 개인이 소소하게 하는 활동을 더 응원하는 편이다. 작게는 5명, 정규 행사에 많으면 180명까지 동참해서 참여하고 있다.

올해 4월에 함께 뜻이 맞는 단체끼리 모여 인천 해변으로 대청소를 다녀왔는데, 7만리터(ℓ) 가량의 쓰레기를 수거해서 뿌듯함과 환경에 대한 걱정이 함께 밀려든 기억이 있다. 

사진=와이퍼스
지난 4월 인천 해변에서 대청소 중인 황승용 와이퍼스 닦장. 사진=와이퍼스
와이퍼스가 담배 제조사에 벌인 '꽁초 어택'. 사진=와이퍼스
와이퍼스가 담배 제조사에 벌인 '꽁초 어택'. 사진=와이퍼스
사진=더숲
사진=더숲

Q. 처음 거리 쓰레기를 집에 들고 갔을 때 가족 반응이 좋았을 리는 없었을 것 같다. 부인을 와이퍼스 멤버로까지 영입할 수 있게 된 계기라면? 

처음엔 맛있는 걸 사주거나 영화를 보여주면서 함께 쓰레기를 줍자고 부탁을 했다. 지금은  시키지 않아도 아내가 사람들과 만나서 활동하는 걸 거들어주고 있다. 와이퍼스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긴 덕이다. 

Q. 지난 3월에 출간한 ‘지구 닦는 황대리’에서 담배 제조사에 벌인 ‘꽁초 어택’ 이야기가 아주 인상 깊었다. 전국 각지에서 8만 개비의 담배꽁초가 모였고 제조사로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미팅 제안을 받았는데,  관련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언젠가 닦원들에게 플로깅하면서 가장 많이 줍는 쓰레기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는데, 단연 담배꽁초였다. 하지만 담배꽁초의 문제는 단순히 많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95% 이상의 담배에 플라스틱 필터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 오염을 가속화시킨다. 닦장과 닦원들은 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꽁초 어택’에 돌입했다. 

무려 3차의 걸친 꽁초 어택으로 전국 각지에서 8만 개비의 담배꽁초가 모였고, 제조사로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미팅을 제안받게 되었다. 더불어 환경부 장관에서 손 편지 쓰기 캠페인을 벌여 미취학 아동부터 60대 어르신이 쓴 정성이 담긴 170여 통의 손 편지들이 모였고, 결국 한 학생이 대표로 환경부 장관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기업도 충분히 기업의 사정이 있고, 결국은 소비자, 정부(지자체), 기업이 진심으로 합심을 해야 환경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와이퍼스는 그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로써 최대한의 역할을 해보려고 한다. 

Q. 플로깅을 하면서 살이 12kg이나 빠지고 만성질환도 고쳤다고 들었다. 다이어터들이 들으면 귀가 번쩍할 소식인데, 플로깅을 통해 바뀐 몸무게 말고도 신상에 변화된 요소가 있다면?

플로깅을 통해 자연스럽게 절약을 하게 되면서 경제적인 이득도 얻었다. 평소에도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대나무 칫솔과 고체치약을 쓴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고 비건식을 지향하고 있다. 

추가로 와이퍼스 활동을 통해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정서적인 행복도 가득 받았다. 게다가 버킷리스트였던 책도 냈으니, 쓰레기 줍기는 내게 진정 행운이 아닐 수 없다.

Q. 와이퍼스를 통해 곧 비영리 사단 법인 이사장이 된다고 들었다. 이를 통해 활동 범위를 어떻게 넓힐 건지 궁금하다. 

환경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이들을 어떻게 잇고 연결해 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보려고 한다. 혼자는 외로워도, 함께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끼면 지속가능성이 생기고 그렇게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도 대리이자 이사이자 작가인 N잡러로서 계속 일할 건지 궁금하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부터 많은 분들의 소중한 후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최소 15년 정도는 사비로 함께 활동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법인이 충분히 성장했을 때 ‘용돈’을 받을 계획이 있다. N잡러로 계속 살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병행하면서 살고 싶다. 지금, 내게는 그것이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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