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태블릿에 ‘루나(LUNA)’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태블릿에 ‘루나(LUNA)’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루나·테라의 폭락 사태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이 큰 충격을 받으면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에도 금이 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는 스테이블 코인을 안전자산으로 볼 수 없다며, 금융당국의 명확한 감독·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장 성공한 한국산 암호화폐로 꼽히는 루나와 스테이블 코인 테라는 한때 암호화폐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 기준 시가총액 10위 안에 자리할 정도로 성장했으나 지난 8일 이후 시작된 폭락 사태로 인해 가치가 99.9% 증발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폭락이 시작된 이후 일주일간 루나와 테라의 시가총액은 약 450억 달러(약 58조원)나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두 암호화폐는 주요 거래소에서 모두 거래 중단이 확정된 상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은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 시장에서 유일한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다. 실제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테이블 코인이 가진 안전자산으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다르코 부코비치 러시아민족우호대학(RUDN)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국제학술지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 달러와 연동된 세계 1위 스테이블 코인 ‘테더’를 암호화폐 시장의 유일한 안전자산이라고 주장했다. 

부코비치 교수는 지난 2020년 1월 22일부터 4월 11일까지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암호화폐 및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지수, 금, 원유의 가치 변동을 분석했는데, 테더는 다른 변동성이 큰 다른 암호화폐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다른 암호화폐들이 S&P500 지수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 것과 달리 테더는 별다른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위험 자산 가치가 급변했던 코로나19 초기에도 스테이블 코인만큼은 작은 변동성을 유지하며 독립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부코비치 교수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테더의 움직임은 매우 독특하다”라며, “이는 테더가 안전자산으로서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근에는 스테이블 코인의 안전자산으로서의 잠재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와 비스와나트 나트라지 영국 워릭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지난 2월 ‘아시안 이코노믹 페이퍼’에 공동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커질수록 테더의 파산 위험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지난 2020년 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테더의 선물·현물가격 등을 분석했는데,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100bp(1bp는 0.01%포인트) 증가할 때 테더의 파산 위험도 4.3b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스테이블 코인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출입하는 수단”이라며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의 변동성과 암호화폐 시장 전체의 위험을 통해 테더의 파산 위험을 가늠한다”라고 설명했다.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는 17일 오후 4시 현재 코인마켓캡 기준 0.13달러까지 가치가 하락한 상태다. 일부 투자자들은 달러 등 실물자산을 담보로 하지 않고 암호화폐 루나의 발행량을 조절해 가치를 1달러로 고정하는 테라의 페깅(가치 고정) 시스템이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테라와 달리 달러 등 실물자산을 담보로 가치를 유지하는 테더 또한 지난 12일 0.95달러까지 가치가 하락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시장의 변동과 무관하게 가치를 유지한다는 스테이블 코인만의 장점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도 커지는 모양새다. 

테더처럼 실물자산을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도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발행사가 스테이블 코인을 달러로 바꿔줄 수 있는 충분한 예치금을 확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21년 5월 기준 테더의 담보 자산 중 현금 비중은 겨우 3.87%에 불과했다. 단기적인 상환 요청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이미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하기 위한 각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의회에는 다수의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안이 발의돼있는데, 테라와 같이 실물자산이 아닌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포함돼있다. 또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스테이블 코인의 금융안정성에 위험이 있다”며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도 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받는 법안을 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내에서도 루나 사태를 계기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17일 열린 임원회의에서 루나·테라 폭락 사태에 대해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도 저하 및 이용자 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와 관련한 피해상황 및 발생원인 등을 파악해, 앞으로 제정될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불공정거래 방지, 소비자피해예방, 적격 ICO 요건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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