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기후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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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인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자칫 재생에너지 공급이 원활한 곳으로 기업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씽크탱크 엠버(EMBER)는 지난 12일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현황과 탄소집약적인 주요 11개 기업의 에너지 소비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엠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현대제철·현대자동차·삼성SDI·포스코·LG전자 등 8개 기업은 2020년 기준 총 84.9테라와트시(TWh)를 소비했다. 이는 2020년 21.5TWh에 불과한 한국의 풍력·태양광 발전량보다 4배 많은 수치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낮은 편에 속한다. 엠버가 지난달 발표한 ‘국제 전력 리뷰 2022’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발전량에서 풍력·태양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10.3%로 2015년(4.6%) 대비 2배 이상 상승했다. 반면 한국의 지난해 풍력(0.55%)과 태양광(4.12%) 발전 비중은 총 4.67%에 불과했는데, 이는 조사대상 102개 국가 중 45위에 해당한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기업이 소비하는 전력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의 재생에너지 대신 화석연료 발전에 의존하게 될수록 향후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기업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영국의 비영리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 시작한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의 소비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다. 더 클라이밋 그룹 홈페이지에서 RE100에 동참하기로 선언한 기업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수만 무려 360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포함돼있으며, 국내에서도 KB금융그룹,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등이 RE100 참여를 선언했다. 

RE100은 기후단체와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캠페인이지만,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현재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돼버렸다. 애플, 구글, BMW 등 일찌감치 RE100에 합류한 글로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LG화학과 SK하이닉스 등은 이미 납품 기업인 BMW, 애플로부터 RE100 동참을 요구받은 바 있다. 

만약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공급이 확대되지 않아 국내 기업들이 RE100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경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RE100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에서 수출이 각각 15%, 31%, 40%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재생전력인증서(REC),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최근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세 도입을 선언하면서 기업의 재생에너지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입법 패키지 ‘핏포55’(Fit for 55)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2026까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한다는 계획도 들어있다. EU는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에 따라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유럽 내 생산품에만 적용해오던 것을 역외 생산품에도 적용하겠다는 것. 

만약 탄소국경세가 도입된다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낮고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EU가 모든 산업 분야에 이산화탄소 1t당 30유로(약 4만원)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경우 국내 기업은 약 1.9%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과 같은 수준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처럼 재생에너지로 인한 부담이 높아지면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공급이 원활한 곳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위험도 더욱 커진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에게 충분한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프라를 신속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후솔루션 전력시장계통팀의 저스틴 홈스 프로젝트 매니저는 “한국의 화석연료 과대한 의존은 기후에도 위협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업들의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며 “차기 윤석열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위한 공정하고 유연한 전력시장 마련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홈스 매니저는 이어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를 충족을 맞추기 위해선 풍력과 태양광 입지에 불필요한 이격거리 규제를 없애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엠버의 이유니 아시아 전력데이터 분석가 또한 “IPCC 과학자들은 100여 개에 달하는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빠른 방법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며,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과 설비 확대는 에너지 및 기후위기 극복은 물론 한국 수출 경제에도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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